미의 안보기능은 계속 유지/나토 외무회담 결산(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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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위상 정립에 어정쩡한 결론/조직·기능 재편원칙엔 합의
지난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16개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나토의 진로문제와 관련,근본적인 사안을 놓고 회의를 가졌다.
이번 외무장관회의의 가장 중심적인 의제는 ▲나토는 무엇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할 것인가 ▲소련 공산주의의 군사적 위협이 사실상 소멸됐는데도 미국의 핵우산은 언제까지 필요하며 미군은 또 얼마나 더 유럽에 주둔해야 하는가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는 추세라면 미국 중심의 나토가 아닌 새로운 유럽독자의 방위체계·기구를 구축할 필요는 없는가 ▲새로운 방위체계를 세울 경우 미국을 대신할 유럽의 군사적 중심국가는 어느 나라이어야 하는가 등 4개의 명제였다.
나토 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지난 6,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같은 문제들에 대해 고민했으나 끝내 뚜렷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다만 벨기에 브뤼셀의 국방장관회담에서 마련한 미군의 부분철수를 비롯해 나토군사력의 체중감량,신속대응군의 창설 등 군사전략적 조직과 기능의 재편을 추인하고 유럽공동체(EC)의 군사적 발언권과 역할을 강화하되 기본적으로는 나토가 서유럽 방위문제를 계속 담당한다는 정도의 결론만 내렸다.
미국을 배제한 유럽중심의 독자적인 안보체제로 점진적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해온 프랑스·이탈리아,아직도 위협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며 미국만이 진정한 위기에서 유럽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영국과 네덜란드 등 회원국들의 엇갈린 의견을 봉합한 어정쩡한 선에 머물렀다고 할 수 있다.
나토는 동서냉전의 격화에 따라 지난 1949년 서유럽에 대한 공산세력의 위협을 막아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소련은 이에 맞서 56년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창설했고 따라서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서로의 존재이유를 설명해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였다.
그러나 소련의 신사고외교정책과 베를린장벽의 붕괴,동구의 민주화 등으로 상황은 급변했다.
2개월전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폐지됐고 동구주둔 소련군 50만명은 소 국경안으로 철수하고 있다.
소련이 다시 서유럽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개전을 결심한 뒤에도 2개월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해졌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결국 나토는 무엇을 겨냥해 막대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유럽은 또 무엇때문에 미국의 핵우산을 계속 빌려야하는지 불분명해진 것이다.
나토회원국 외무장관들은 이번 회의에서 나토의 새로운 과제로 ▲유럽지역에서 전쟁을 억지하는 안정적 안보환경을 조성하고 ▲군사전략적 균형을 유지하며 ▲회원국들에 사활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 관해 범대서양적 토론무대로서 나토의 기능을 정립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요컨대 탈냉전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이론적 현실일뿐 아직 소련의 위협이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며 미국의 유럽안보기능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최근 동구국가들은 소련의 무력재개입을 두려워해 나토가입 또는 나토의 보호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하고 있다.
소련은 나토의 존속·기능확대와 동구국가들의 이같은 관심이 서유럽의 일방적인 군사적 우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나토는 따라서 이번 회의의 성명을 통해 소련의 동구철수로 야기된 군사적 공백상태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며 특정국가의 고립화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동구국가들의 나토편입계획을 마련하지 않는등 소련을 십분 배려했다.
그러나 외무장관회의 성명은 또 동구국가와 나토의 유대강화를 강조해 사실상 소련으로부터의 동구보호를 선언하기도 했다는 분석을 낳고 있기도 하다.
결국 나토의 위상정립을 둘러싼 이번 회의의 결론은 대단히 유보적이고 잠정적인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시 말해 문제의 성격상 나토의 위상정립 및 체제변화의 문제는 당분간 회원국들간에 두고두고 논의될 수 밖에 없는 문제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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