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관리 둘러싼 밥그릇 싸움/이춘성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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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달의 통화동향이 발표되는 매달초가 되면 한국은행,그중에서도 자금부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총통화(M□)증가율이 억제목표치(17∼19% 증가)를 넘어섰을 경우에는 비상이 걸린다. 올 들어서는 19.4%의 증가율을 보인 4월초가 그랬다. 이번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음은 물론이다. 5월중 총통화가 19.5%로 억제상한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통화관리담당자들은 신문에 어떻게 기사화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신문기사의 내용에 관계없이 제목·기사의 크기에 따라 「높은 곳」으로부터의 야단의 정도차가 너무 커서다.
5월의 경우 비록 총통화가 억제목표를 넘어서긴 했지만 내용면에 있어서는 「불가피한」 속사정을 담고 있다.
우선 증시의 장기침체로 공개·증자 등을 통해 자금의 직접조달이 거의 불가능해진 기업들이 은행돈을 빌려다 쓸 수 밖에 없어 대출계수가 늘어났다. 더욱이 높은 이자를 받는 단자사들마저 대출은 커녕 오히려 대출회수에 나서고 있어 은행마다 돈을 빌리기 위한 기업의 행렬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당장 부도가 날 판인데 은행이라고 돈을 빌려주지 않을 수 없는 처지임을 한은도,재무부도 잘 알고 있다.
한은이 아무리 대출을 줄이라고 경고하고 「위협」해도 최소한의 대출,부도를 모면하기 위한 하루짜리 타입대의 성행은 공개된 비밀이다.
이런 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높은 곳」의 반응은 막무가내다. 동원가능한 모든 정책수단을 다 썼느냐는 질타가 따를 뿐이다. 그래도 5공때보다는 나은 편이다. 그때는 서슬이 퍼랬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통화관리를 당초 목표대로 하지 못하면 『63빌딩 꼭대기에서 투신하라』는 「엄명」까지 있었다.
집권층과 정부가 통화관리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목표보다 더 풀렸다는 발표가 나면 인플레 기대심리가 여지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돈이 많이 풀린 것으로 나타났지만 기업은 「돈가뭄」을 하소연하고 있다. 뭔가 척도가 잘못돼 있는 것이다.
한은은 이 때문에 통화관리지표를 단기성자금이 빠져있는 M2에서 이를 포함한 M□B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재무부의 반대에 부딪쳐 해결치 못하고 있다. 단자사가 한은의 지준관리를 받게 되면 재무부의 영역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실성있는 통화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영역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은 이제 그만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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