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얘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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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집에 도둑이 들었다. 마침 담장을 넘으려는 도둑을 보고 주인은 소리를 질렀다. 『어디 담장을 넘어오기만 해봐라….』
그러나 도둑은 담장을 넘어 유유히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주인은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말했다. 『어디 마루에 올라오기만 해봐라….』
도둑은 들은체도 안하고 마루위로 올라와 안방으로 향했다. 주인은 주먹을 불끈 쥐고 고함을 질렀다. 『어디 안방에 들어가 장농만 뒤져봐라….』
하지만 도둑은 장농속의 물건들을 한짐 싸 들고 나왔다. 주인은 하도 기가 막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어디 이놈,보따리를 가지고 나가기만 해봐라….』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둑은 집밖으로 나가버렸다. 주인은 아직도 화를 삭이지 못하고 도둑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이제 다시 오기만 해봐라….』
이런 옛날 얘기를 우리는 요즘 매일같이 일상중에 보고 듣고 있다. 환경당국은 무슨 일만 벌어지면 벼르기부터 한다. 단속을 강화하고,사직당국에 고발하고,그래도 모자라 몇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환경행정이다.
도시의 대기를 깨끗이 하겠다는 약속은 골백번도 더 들었지만 길거리엔 검은 연기를 내뿜는 버스들이 보아란듯이 폭주한다. 이 말이 미덥지 않으면 언덕길에 더도 말고 1분만 서있어 보면 믿게 될 것이다.
강물을 맑게 하겠다는 약속을 들은 것은 엊그제인데 서울 잠실 종합운동장옆 한강으로 흘러드는 개천물은 언제 보아도 흰 거품으로 뒤덮여있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보이지 않는 후미진 곳의 강줄기에 스며드는 독극물은 보나 마나다.
이젠 강기슭에 죽어 떠있는 물고기쯤은 예사로 보는 일이고,공장폐수는 페놀파동이 지나갔으니 당분간은 잊고 있어도 될 것이다.
세상은 이처럼 천하태평인데,환경당국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무슨 일에 대비해 지금쯤 이런 말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예산없고,인력없고,법이 모자라 우리가 하는 일엔 한계가 있다.』
요즘은 「환경 주간」이다. 우리의 하늘을 쳐다보고,땅을 내려다 보고 물속을 들여다 보면 무엇을 하자는 주간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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