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은 하되 '평화 재건부대'로 못 박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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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와 관련한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지침은 그동안 논란이 돼왔던 파병 규모와 성격을 매듭지은 데 의미가 있다. 추가 파병 규모는 3천명 내로 못박았고, 파병 부대 성격은 '평화 재건지원 부대'를 명확히 했다.

부대의 성격과 관련해선 서희.제마부대와 같은 기능 중심 부대 외에 미국이 요청한 독자적 지역 담당 방안도 함께 검토하라고 했지만 치안은 이라크 군경에 맡길 것이라고 한 만큼 공병.의료 중심의 재건지원 부대가 될 수밖에 없다.

재건지원 부대 파병은 두가지를 저울질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국민 여론이다. 보병 중심의 치안유지 부대 파병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높지 않은 것을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 80%가량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온 공병.의료 중심의 파병안에 대해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파병 군인의 안전이다. 이라크 치안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재건 지원쪽이 이라크인의 반발과 테러를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듯하다. 이라크인들과의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해 테러의 대상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추가 파병 규모를 3천명 내로 한 것은 미국의 요청(3천~5천명)과 미국이 예시한 폴란드형 사단의 폴란드 파병 규모(2천5백여명), 국내 여론을 함께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가 파병 시기.장소는 빼놓고 규모.성격만 먼저 발표한 것은 이를 놓고 정부 부처 간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방부는 대통령의 지침과 달리 특정지역을 맡아 안정화 작전을 하는 치안유지 부대 파병을 검토한다는 인상을 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파병과 관련해 여러 억측이 난무하는 바람에 서둘러 부대 규모와 성격을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는 또한 오는 17~18일로 예정된 한.미 국방장관 간 연례안보협의회(SCM)를 앞두고 우리 정부의 방침을 미리 알리는 측면도 없지 않다. 여기에는 우리 정부의 독자적 결정을 강조하려는 생각도 깔려 있다. 盧대통령의 이번 지침으로 SCM 때의 파병 협의 결과가 주목을 끌게 됐다. 미국은 이라크 안정화 작전을 위한 치안유지 부대를 파병해주기를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최훈.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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