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탈락 수학문제는 … 전문가 "문제 자체 오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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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벡터가 세 공간벡터 a, b, c가 모든 실수 x, y, z에 대해 |x a + y b + z c| ≥ |x a| + |y b|을 만족할 때 a와 b, b와 c, c와 a가 각각 서로 직교함을 증명하라." 1995학년도 성균관대 대학별고사 수학II의 7번 주관식 문제다. 이 문제는 12년 뒤 김명호씨의 테러를 불러오게 한 단초가 됐다. 채점위원이던 김명호 당시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는 이 문제가 "전제부터 잘못됐다"며 "전원 만점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김씨를 채점위원에서 배제했다.

학교 측은 모범답안도 공개했다. "해당 문제를 '영벡터가 아닌 세 벡터 a, b, c와 모든 실수 x, y, z에 대해 조건명제 p이면 조건명제 q'라는 방식으로 바꿔 쓰도록 하자. 그런데 전제조건 p를 모든 실수 x, y, z에 대해 만족하는 영벡터가 아닌 벡터 a, b, c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조건명제 p의 진리집합은 공집합이다. 이는 조건명제 q의 진리집합의 부분집합이다. 따라서 'p→q'라는 조건명제는 참이다."

김씨가 96년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하자 학계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씨가 소송을 내자 전국 44개 대학 수학과 교수 189명은 "학자적 양심으로 의견서를 제출했다.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연판장을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서울대 수학과의 한 교수는 16일 "수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어떤 벡터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할 때 각각 서로 직교함을 보여라'는 것인데 그 조건을 만족하는 벡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관계자는 "12년 전 당시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지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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