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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1)|<제85화>나의 친구 김영주-「김일성」으로 둔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김 통역의 본명이 김일선이 아니라 김영주로 밝혀진 이상 앞으로는 그를 김영주라는 이름으로 부르겠다. 김일성의 친동생인 그가 자기 큰 형 이름이 원래는 김성주였는데 지금은 김일성, 즉 오늘(1945년10월14일) 모란봉 공설운동장에서 시민환영을 받은 김일성이라고 분명히 필자에게 말했다. 김성주가 지금은 김일성으로 됐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나는 분간할 수 없었다.
필자가 10세 전후일 때 우리 아버님은 약주를 드시면 언제나 「오너라 동무야, 강산에 다시 되돌아 꽃이 피면」하는 『봄 노래』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 노래가 끝나면 반드시 『이제 곧 김일성 장군이 나타나신다』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김일성 장군은 백발노인으로 축지법을 쓰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그 백발장군이 지금은 몇살쯤 되셨을까. 나는 김영주에게 물었다.
『김 동지, 형님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셨길래 김일성 장군이란 말씀입니까.』 그는 서슴지 않고 33세라고 대답했다.
33세라면 내 계산과는 맞지 않았다. 아무리 따져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의아해하는 것을 눈치챈 김영주는 『네, 알겠습니다. 백발이 성성해야 할 김일성 장군 나이가 왜 33세냐는 말씀이지요. 나 역시 어렸을 때는 진짜 옛 김일성 장군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요. 부친이 늘 우리 형제에게 얘기하셨으니까요. 「너희들도 그런 훌륭한 분처럼 되라고」요.
한의원을 하시던 부친은 내가 6세때 돌아가시고 모친도 내가 12세때인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일찍부터 성주형을 따라다니며 유격대 노릇을 했습니다. 그 위험한 나날로 보아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이 참 용한 거지요. 철주라는 작은형이 있었는데 그 형은 19세때 남만주 동령현 노흑산에서 전사했지요(노흑산은 산명이 아니라 간도성에 있는 지명이라고 했다).
성주형님은 만주에 있는 우리독립군 사단장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고 전투를 잘했기 때문에 진짜 김일성 장군이 이름을 물려준 겁니다. 형님에게 이름을 물려준 김일성 장군도 역시 그 전대의 진짜 장군으로부터 이름을 물려받았답니다.
『네, 그것을 양명이라고 하지요. 이름을 물러 받은 김 동지의 형님은 승명한 것이고. 김 동지, 그런 연유로 형님이 젊은 나이에 김일성 장군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김 동지의 「김일선」이란 이름은 누구에게서 승명한 겁니까. 『이것은 내가 적당히 지은 겁네다. 왜「일선」 인지 아십니까.
『…….』
『아주 간단합네다. 일본 놈들이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속임수로 떠들던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은 한 몸과 같다고 기만하기 위해 만든 조선총독부 표어)를 본떠 나는 일선(일본과 조선)이라고 했습니다. 내 속셈은 급할 때 일본군경에게 「자 보시오. 나는 내 이름까지도 일선 일체라는 뜻에서 일선이라고 지었지 않느냐」고 둘러대기 좋게 만든 이름입니다. 실제로 일선이라는 이름의 효과도 봤디요.
그러나 일선의 참뜻은 김일성형의 「일」과 조선의 「선」을 딴겁네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형님과는 언제 헤어지셨나요.
부모·형제가 다 돌아가시고 혈육이라고는 큰 형님·한 분이었는데 왜 헤어지셨나요.』
『‥‥‥.』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말이 없었다. 밤 공기가 제법 쌀쌀해진다.
이제 김영주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인가. 【이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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