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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문화의 핵은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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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업 구성원의 행동 규범을 창출하는 공유된 가치 혹은 신념의 체계'. 사전에서 찾아본 기업문화의 정의다. 쉽게 말하면 어떤 기업의 직원들이 일하고 생각하는 방식 혹은 이 때문에 만들어지는 독특한 조직 분위기다.

중앙일보와 아주대 경영대학원이 공동 기획해 이달 9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한 '지식창조 시대-4대 그룹 기업문화' 시리즈의 반향은 의외로 컸다. 4대 그룹은 물론 그 외의 기업 관계자들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조사에 쓰인 설문이나 결과 자료를 구할 수 없느냐"는 기업 인사팀이나 조직문화 연구자들의 문의도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기사에 대한 해당 그룹의 반응이 각자의 기업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현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기업 이미지의 유.불리를 따지는 곳이 있었는가 하면, '조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좋은 기획'이라며 '통 크게' 넘어가는 곳도 있었다. '우리도 잘 몰랐던 부분이 있으니 자료를 놓고 같이 공부해 보자'는 그룹도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주요 그룹의 기업문화는 창업자의 개인적 성격이나 리더십 특성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후 2.3세대 경영자로 넘어오고 경영환경도 변하면서 각 그룹의 문화는 많은 변화와 함께 탈.변색을 했지만, 그 고유한 특성은 그대로 살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룹의 규모가 커질수록 구성원을 통합시켜 주는 기업문화의 중요성도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관심은 당연히 '좋은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러나 기업문화에 대한 정해진 모델은 없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그 우열을 따지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빠르게 적응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와 그렇지 않은 문화는 있다. 그런 점에서 '좋은 기업문화'는 구성원의 에너지를 잘 동원해 생산성을 높이고, 개인의 창조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개방적 문화다. 진부한 말이지만 결국 시스템과 개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의 기업문화는 많이 바뀌었다.

이번 조사 결과 집합주의가 약해지고 개인주의가 강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와 업적이 강조되면서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등 조직 분위기도 팽팽해졌다. 그러나 문제점도 눈에 띈다. 미래가 더 잘될 것이라는 낙관주의가 줄어들고 애사심과 업무만족도도 줄었다. 한마디로 조직의 성과는 강조되지만 개인은 행복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조직과 일에 대한 열정, 난관을 헤쳐나가는 도전정신 같은 '한국적 기업문화의 장점'이 희석된 탓이다.

이 점과 관련해 요즘 세계 기업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일본 도요타의 기업문화는 한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서구적 합리성과 철저함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를 묶어 내는 구심점은 결국 '평생 고용'이 대표하는 인간적.동양적 정서다. 결국 좋은 기업문화의 열쇠는 사람인 셈이다.

이현상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