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실력(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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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의 대학생들은 학기말이 되면 종강시간에 작성해야 하는 리포트가 하나 있다. 담당교수가 강의실에서 나누어주는 백지에 그 교수에 대한 감상문을 써내야 한다.
물론 『교수님의 강의가 아주 감명깊었습니다』는 따위의 작문은 아니고,그 교수의 이론전개 방법,화술,강의태도,질의응답능력 등에 관해 학생들의 소견을 곧이곧대로 적는다. 그중에는 교수가 강의시간을 얼마나 잘 지켰는지,휴강은 얼마나 잦았는지,하다못해 교수의 음성은 제대로 알아들을 만한가까지도 평가한다.
이 리포트는 교수가 거두어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밀봉해 총장실에 제출한다.
나중에 이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되어 교수임용의 근거로 삼는다.
미국의 대학교수 직급은 우리나라처럼 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 네 단계로 되어 있다. 그중 조교수나 전임강사는 계약제에 의해 1년 단위로 계약을 경신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평가가 시원치 않으면 탈락되고 만다.
교수나 부교수가 되면 테뉴어제에 의해 65세 정년까지 지위가 보장된다. 하지만 정년을 보장받았다고 누구나 마냥 명예만 누리고 지낼 수는 없다.
한 교수의 강의가 형편없다는 평판이 나면 그 강의에 등록하는 학생이 없다.
이쯤되면 아무리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도 바늘방석 위에 속편하게 앉아있을 수가 없게 된다.
우리나라에선 벌써 몇년을 두고 대학교수의 재임용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대학안에서는 주위로부터 미운 오리로 찍힌 교수를 밀어낼 수 있는 구실이 되며,대학밖에서는 정부의 눈에 난 교수들을 역시 제거하는 방편으로 악용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적어도 제3공화국 때까지도 알려진 비밀이었다.
요즘 교육부는 국공립대 교수의 재임용제도를 폐지할 궁리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난센스다. 교수재임용제는 제도가 나쁜 것이 아니라 운영방식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그 제도를 폐지하고 나면 그나마 시원치 않은 대학은 학문의 박물관 구실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창조적이고 진취적인 학문의 전당으로는 더 이상 구실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제도를 악용할 소지가 있으면 그것을 막는 장치를 할일이지,필요하고 좋은 제도마저 없앤다는 것은 지극히 비교육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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