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돈거래설 싹부터 잘라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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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광역의회 선거를 앞두고 주요정당들의 공천권 행사에 금품수수설이 나도는 것은 대단히 우려할만한 조짐이 아닐 수 없다.
어제 날짜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민자·신민당 안에는 지금 후보공천을 둘러싸고 금품수수·자격시비에 관한 잡음이 심각하다고 한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일부 지역에서는 추천권을 가진 국회의원 또는 지구당위원장들이 공천희망자들에게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액수의 많고 적음이 선정기준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는 탈락자가 투서를 하고 경쟁자끼리 음해를 일삼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전과자등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돈의 힘으로 버젓이 공당의 공천을 거머 쥘 가능성도 있어 중앙당이 뒤늦게 조사에 나서는등 법썩을 떤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마디로 한심하고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 출마한 후보끼리의 경쟁이 공명정대하지 못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그 배후에 주요정당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지자제차원을 넘어 우리 정치와 나라의 장래를 암울하게 하는 나쁜 조짐이다.
더 늦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함은 두말할 나위없다. 지자제가 정치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국민여망의 시각에서 더욱 그렇다. 이대로 뒀다간 큰 일이다.
6월 광역의회선거에 이어 내년초에는 14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내년말에는 대통령선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3월 기초의회 선거에서 모처럼 공명선거의 모델을 발견하고 흐뭇해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주목할 점은 광역의회 선거법이 기초의회와 다른 점은 정당개입이 허용된 것 뿐이다. 따라서 광역의회선거가 타락하면 그 1차적 책임을 전적으로 정당들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판에 공천단계에서 부터 주요 정당들이 중앙정치의 나쁜 행태를 조장하거나 방관하는 것은 정치 불신의 차원을 넘어 지자제의 백년대계를 그르치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불과 얼마전 임시국회에서 여야는 의원윤리실천규범을 통과시켰다. 규범은 의원의 직권남용·직무관련 금품취득을 엄히 금하고 있다. 규범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당이 부여한 공천자 추천권을 금품과 바꿔 먹는 일부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런 행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이같은 정당과 국회의원을 당장 벌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를 갖고 있지 못하다. 계파별로 사분오열된 민자당은 효과적인 내부통제력을 발휘할 능력을 갖지 못한 것 같다. 야당역시 일시 주춤하며 국민의 눈치를 살필지 모르지만 이른바 「특별당비」란 검은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정치판의 뒷돈 거래는 비록 믿을만한 소문이 무성하더라도 실정법상 구증하기 힘든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이같은 불법·탈법을 하고서라도 정당공천을 받으려 하게 만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현행선거법이 무소속엔 유독 가혹하기 때문이며 당의 이름으로 무리지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중앙정치에서와 같이 소위 이권개입 등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악습을 추방하는 최종 판관은 유권자들이다. 넌더리 나는 국회의 온갖 잡상이 전국 15개의 광역의회에서 일제히 재현되는 것을 최대한 억제하려면 어떤 정당,어떤 후보가 반칙을 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할 시민운동이 활발히 일어야 되고 유권자의 표가 심판을 내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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