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교수직 사임한 김동길교수(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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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자보 쓴 학생 사과않는데 실망”/“학생 정정당당하게,정치는 잔꾀 안써야”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잃었으므로 교수직을 사임합니다.』
8일 다니던 연세대에 이같은 딱 한줄의 사직서를 던진 김동길 교수를 만났다.
­사표를 낸 동기는.
▲학생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죠. 일전에 강경대군이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뒤 부모의 심정이 되어 그런 죽음을 하지 말라고 강의중에 당부했더니 어느 학생이 대자보에 써붙이고 그게 다시 신문 고십거리가 됐는데도 며칠이 지나도록 써붙였다는 학생이 나타나지 않아요.
1천명 가까운 학생이 내 강의를 듣기 때문에 강의중 나와 학생간의 대화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대자보를 붙인 사실보다 끝내 써붙인 학생이 나타나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데 배신감을 느낀거죠. 나는 이 한가지 사실로 교육자체에 커다란 실망을 느꼈습니다.
­학생들에게 생명을 가볍게 버리지 말고 살아서 끈질기게 투쟁하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김교수도 사표를 내기보다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계속 설득해야 옳은 것 아닌가요.
▲가르치는 일도 예술입니다. 가르치는데 의욕을 잃었을 때는 떠날 수 밖에 없어요.
­현 시국을 위기로 보십니까.
▲결코 위기가 아닙니다. 동족끼리 서로 죽여야 하는 「제2의 6·25」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어진만큼 당면한 시련만 지혜를 모아 극복하면 우리에겐 민주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학생들의 요구나 시위가 지나친 점도 있으나 사회 발전을 위한 순기능도 있다고 보는데….
▲총칼보다 투표에 의한 승리가 진정한 승리입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폭력이나 격앙된 감정은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 학생들이 옳다고 생각하면 학생들 앞에 나서라고 동료교수들에게 호소합니다.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정정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말하자고 말입니다.마찬가지로 정부도 전경만 고생시킬게 아니라 진정 그들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전경 앞에 나서야 합니다.
­떠나는 마당에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순수함과 지혜로움을 언제나 함께 유지해야 하고 자기의 자유를 제한할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유를 제한할줄 모르면 더 큰 힘을 가진 세력의 지배를 받게 마련이고 폭력에 의한 체제전복은 곧 민주질서의 전복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노정권에 하고 싶은 말은.
▲정치를 하는데 꾀를 써서는 안됩니다. 여소야대가 불편하다고 해서 마치 작전하듯 3당통합을 한다든가,국민이 원하지 않는데도 내각책임제 개헌을 계속 거론하는 잔재주를 피우니 불신을 받죠.
지금은 국민투표를 실시해 국민의 신임을 물어야 합니다. 뾰족한 수가 없으면 내각총사퇴도 고려해야 합니다. 뼈저린 반성을 통한 진실한 자세·의지를 보여야 할 때입니다.
그는 가르치는 일도 예술과 같아 작품제작의 의욕을 잃었을때는 떠날 수 밖에 없다면서도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한 대문은 항상 열려있다』고 아쉬움을 남겼다.<최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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