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노동자의 "대부"-사당의원 원장 김록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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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직업병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노동부 공무원들로부터 『또 김록호냐』는 다소 원망 섞인(?) 눈총을 받고 있는 사당의원 원장 김록호씨(34).
원진레이온 사태를 계기로 직업병 피해노동자의 「대변자」로 알려지기 시작한 김씨는 노동계에서는 이미 「양심적인 의사선생님」으로 높은 신망을 얻어온 사람이다.
김씨가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원진레이온에서 처음으로 이황화탄소 중독환자가 발생, 사회적 물의가 빚어졌던 88년 여름. 원진레이온 직업병 피해자 및 가족들이 국회진상 조사단 앞에서 자신들을 대변해줄 의사를 「인의협」에 추천 의뢰하자 인의협은 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산업보건을 전공한 젊은 의사 김씨를 이들에게 소개해준 것이다.
김씨는 이때부터 일본 구마모토 대에서 직업병을 연구하고 있는 김양호씨(35)와 함께 회사 및 원노협 측이 공동으로 구성한 직업병 판정기구인 「6인 위원회」 등에 참여하면서 직업병 피해자들을 뒷바라지해오고 있다.
『김봉환씨 사건으로 원진레이온 사태를 끝까지 파헤쳐 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일하던 근로자가 누가 봐도 명백한 이황화탄소 중독증세로 직업병 다발업체에서 쓰러졌는데도 직업병 판정을 내려주지 않고 근무 부서(원액2과)가 소외 「비유해부서」라는 이유로 요양신청서 발급을 거부, 제때에 진료를 받지 못하게 해 결국 숨지게 만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김씨는 서울대병원에서 레지던트를 마친 뒤인 85년 1천5백만원의 빚을 내 사당동에 개인병원을 차려 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의료봉사를 해왔다. 그러나 빈민 의료문제는 의료보험제도의 발달과 함께 차차 해결될 수 있겠지만 법률적 보상·인권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직업병의 문제는 누가 팔 걷고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더 큰 문제라는 생각에 방향전환이 이뤄졌다.
『직업병은 한번 걸리면 완치가 어렵고 병 발생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특징이 있으므로 근로자보호 차원에서 웬만하면 직업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직업병에 대한 사전예방대책은 못 세우더라도 직업병 증세를 보이는 근로자들이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치료를 받지 못해 희생당하는 일만은 없어야 합니다.』
서울대 영문학박사로 경희대에 출강중인 부인 전승희씨(34)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는 김 원장은 사회적 현실에 눈을 감아버리지 않는 의사가 참된 의사라는 소신 속에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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