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 돈 넘쳐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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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지난해 연말 태국 정부가 갑작스런 외환 규제조치를 취하자 태국 증시가 폭락하고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친 적이 있다. 이에 1997년 바트화 폭락으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태국이 겪은 위기와 최근의 금융위기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당시는 외국자본 이탈로 바트화가 폭락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과도한 외자 유입으로 인한 바트화 강세가 문제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태국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유동성 과잉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잡지는 각국의 외환보유액과 미국 통화량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국제 유동성을 조사했다. 이 결과 지난 4년간 국제유동성이 연평균 18%나 증가,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아시아 시장으로 몰려 각국 통화를 대폭 절상시켰다. 바트화의 경우 지난 한해 달러에 대해 무려 16%나 절상되면서 태국 수출업체들을 힘들게 했다. 비록 태국 정부가 초강경 외환규제책 발표 이후 하루 만에 시장의 반발에 밀려 증권 관련 규제를 철회했지만 채권 분야의 규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금리인하를 통해 태국 채권의 수익성을 낮추는 방법으로 외국 자본의 과다 유입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본 것이라는 지적이다. DBS은행 이코노미스트인 데이비드 카본은 "핵심은 바트화 강세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태국 중앙은행이 진짜로 걱정하는 것은 과도한 유동성"이라면서 "금리인하는 유동성을 오히려 증대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앙은행이 환율 방어에 나설 경우 바트화 급등은 막겠지만 국내 유동성은 오히려 늘게 된다.

한국.대만 등 아시아 각국의 중앙은행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루비니 글로벌 이코노믹스의 이코노미스트인 브래드 세서는 "무역수지 흑자와 외국인 투자자금이 늘어나면서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달러를 어쩔 수 없이 매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중국 등은 자국민에 대한 해외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등 통화 절상압력을 완화시키려 하지만 큰 성과는 못 보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 외국인 투자자금이 넘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국제적인 저금리. 이 때문에 미국 국채 등 선진국의 안전상품의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금이 이머징 마켓의 주식과 채권, 부동산 시장에 밀려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신흥시장에서의 파생상품 투자와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국가 통화로 돈을 빌려 고금리 국가에서 돈을 빌려주는 것)도 늘고 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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