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KGB(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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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소련사람들은 모스크바시의 제르진스키광장을 「눈물과 미소의 광장」이라고 부른다. 눈물은 KGB를 상징하고,미소는 어린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붉은 광장」에서 북쪽으로 걸어 15분쯤 가면 그 광장이 나온다. 광장의 한 가운데엔 외투를 입은,음산한 인물동상 하나가 서있다. 제르진스키,10월 혁명에 앞장서고 나중에 소련의 초대 내무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그 동상의 뒤엔 연녹색의 우람한 3층 건물이 있다. 제르진스키가 창설한 KGB본부다. 그 건물을 쳐다보면 소련사람들이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그곳을 「눈물의 전당」으로 부를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눈물의 전당에서 길 하나건너 마주보이는 곳에 4층짜리 건물이 있다. 샹들리에가 요란하게 밝혀져 있고,쇼윈도 너머로는 장난감들이 보인다. 어린이전용 백화점이다. 소련사람들에게도 어린이는 미소의 대상이다.
정작 KGB 건물은 밖에서 보기엔 그렇게 으스스한 모습이 아니다. 기관단총을 든 경비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연두빛의 건물은 다감한 느낌마저 준다. 얼마전에 서방기자들에게 부분 공개된 일도 있었다. 속에 들어가면 사무실의 화사하고 세련된 분위기와 정적은 공포따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더라고 한다.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나서 KGB는 물갈이를 많이했다. 사람만 바꾼것이 아니고 기능도 개편되었다. 제5국이라면 스탈린시대에 75만명의 반체제인사를 처형한 가공할 기구다. 소련정부가 공식으로 확인하는 숫자만 해도 그 정도다. 바로 그 5국이 지금은 없어졌다.
요즘 KGB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는 지난 2월에 있었던 일 하나로 짐작이 된다. 고르바초프의 정적인 옐친의 사무실에서 KGB의 도청장치가 발견되었다고 소련사회가 한참 떠들썩했었다.
그러나 KGB에 주어진 새로운 임무는 또 있다. 해외의 과학기술,첨단기술을 정탐하고 훔치는 일이다. 이런 사실은 그동안 KGB를 이탈해 서방으로 망명한 사람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KGB요원은 적게는 50만명,많게는 70만명까지 추측한다. 어느쪽이든 수십만명인 것은 틀림없다.
이제는 소련과 국교까지 맺고 있는 우리나라에 KGB요원이 없으란 법이 없다. 최근 우리국회에서 그 수가 5,6명일 것이라는 얘기는 순진하게 본 숫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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