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지 않은 토끼(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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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주 오랜 옛날 어느 깊은 산속에 한 늙은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이곳에서 풀잎으로 움막을 짓고,물과 나무열매로 연명하며 수도하고 있었다.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산짐승들 뿐이었다.
그 가운데 여우와 원숭이,수달,토끼는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 이 네마리 짐승은 날마다 이 늙은 바라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주변의 나무열매를 다 먹어버려 더이상 양식거리를 찾을 수 없게 됐다. 늙은 바라문은 먹을 것을 찾아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길 작정을 했다.
그러자 네 짐승은 그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무슨 방도가 없을까 상의했다. 그 결과 각자가 먹을 것을 가져와 바라문을 공양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원숭이는 깊은 산중에 가서 과일을 따다가 바라문에게 바쳤다. 여우는 사람으로 둔갑해 쌀밥을 얻어왔다. 수달은 물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왔다. 마지막으로 토끼는 자신의 몸을 바치겠다고 생각했다. 토끼는 나무를 모아 불을 지펴놓고 바라문에게 말했다.
『저는 힘도 없고 재주도 없어 음식물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이 몸을 한끼 양식으로 잡수십시오』하고 나서 불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순간 불은 꺼져버렸다. 토끼는 전혀 화상을 입지 않았다. 토끼의 깊은 인의에 감동한 바라문은 그 산중에 오래 머물렀다고 한다. 이 얘기 속의 바라문은 정광여래불,토끼는 석존,원숭이는 사리자,여우는 아라한,수달은 목련이었다. 정광여래는 석존이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내리고,나머지 셋은 석존의 제자가 된다. 『잡비유경』의 설화다.
한 여대생에 이어 또 한 대학생이 분신자살을 기도했다가 모두 중태에 빠져있다. 이 나라 민주화 실현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여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바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 순간에 화염을 없애줄 정광여래가 없다.
석존을 불에서 구한 정광의 뜻은 죽기 보다는 살아서 그 깊은 인의를 널리 실천해 인간을 제도하라는 것이다.
신봉하는 가치가 지고지선하고 이에 대한 열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가면서 주장하고 행동해야지 죽음이라는 하나의 행동으로 끝장 내버릴 일은 아니다. 토기가 죽었다면 오늘날 불타의 진리가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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