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외교,실익위주로 나갈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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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짤막했지만 역사적인 상징성을 부각시키며 성사된 한소수뇌회담이 끝났다. 많은 분야에서 의견의 일치가 있었던 것으로 발표된 이번 회담의 성과는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을 더 명확히 이해하고 확인했다는데 뜻이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두나라 관계를 실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과 남북한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질서재편에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실무적으로 모색하는 일이다.
예상했던대로 이번 회담에서는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한 두나라 관계증진문제,남북한 평화정착에 관한 문제와 동북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이 모든 문제가 우리의 국익과 직결된다는데서 이제 두나라 수뇌가 합의한 테두리안에서 어떻게 우리의 실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가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할 때다. 이제는 더이상 한소간 정상외교등의 접촉을 통해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을 시기는 지났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기존의 관심사외에 몇가지 새로운 문제가 논의된 것이 눈길을 끈다. 그중 하나는 남북한의 유엔가입과 북한의 핵사찰 수용에 관한 문제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이 문제들에 관해 우리가 만족할만한 이해를 보였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북한이 국제적 현실을 인식하도록 소련이 노력할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제안한 한소간의 우호협력조약 체결제안이다. 이 제안에 대해 양측은 앞으로 외무장관끼리 협의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소련의 이 제안을 우리는 일단 두나라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발전시키자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러나 이 제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된다고 믿는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냉전시대 소련과의 우호 협력조약은 실질적으로는 군사·동맹관계의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북한과 맺고 있는 우호협력조약이 그러한 예다.
이번 제안은 우선 소련이 추진하고 있는 전체적인 아시아 안보체제의 구도안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한미관계,북한과의 관계,일본·중국과의 관계등에 미칠 영향등도 고려해 우리의 국가이익에 합치되는 방향에서 검토돼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밝힌 아시아­태평양지역 안보체제 구상에 대해 우리측이 「아시아평화의 관건이 한반도에 있으므로 남북한 안정을 이룬 다음 검토하자」고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믿는다.
고르바초프의 이번 방한은 소련측의 일방적인 일정조정에 따른 외교적 무례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의 외교적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는 데서 평가하고자 한다.
그러나 더이상 한소관계의 극적 발전으로 흥분하던 시기는 지났다. 외형적 효과보다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인식해 철저하게 내용상의 실리를 추구해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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