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일 정상회담 뒷얘기/두차례 결렬위기 남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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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골적인 표현까지 동원/문구해석 달라 앞으로 논쟁소지/「영토문제」­「경제협력」 공방으로 일관
『달러로 원칙을 사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이런 방식의 문제해결은 굴욕이다(고르바초프 대통령).』
『영토를 돈으로 살 생각은 없다(가이후 총리).』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일본을 떠난 후 일 소 정상회담의 내막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가이후(해부준수) 총리가 일방적으로 「영토문제의 공동성명 명기」를 요구했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에 반발하면서 일본의 확실한 경제협력 보장을 요청해 두차례나 회담결렬의 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가이후­고르바초프회담은 3일간 총 6회,연 12시간50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이중 국제문제에 관해 토론한 것은 단 2시간 뿐이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영토문제」와 「경제협력」에 대한 공방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특히 양정상이 격심하게 토론을 벌인 것은 18일 마지막 두차례의 마라톤회담.
이에 따라 주변에서는 회담결렬을 점치는 소리가 조심스레 흘렀다.
일본측이 영토문제와 관련,하보마이(치무)와 사코탄(색단) 등 2개섬의 반환을 약속한 56년의 일 소 공동선언 확인을 공동성명에 명기하도록 거듭 촉구했으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를 강력히 거부,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일본언론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노골적인 표현까지 동원,언쟁까지 벌였다.
『자꾸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면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르바초프).』
『당신이 기분이 나쁘면 나도 기분이 나쁘다. 지금까지 진지하게 얘기해왔고 일본도 여러가지 안을 내놓았으니 재고를 바란다(가이후).』
품위를 갖춘 외교적 언사라고 할 수 없는 이같은 직설적 논쟁의 과정에서 협상이 결렬직전까지 치닫기도 했으나 결국 가이후 총리는 2개섬 반환을 인정하라는 요구를,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공동성명에 영토문제를 명기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각각 양보,협상의 숨통을 텄다.
모호한 표현이긴 하지만 『56년 이래 장년에 걸친 양국간 교섭을 통해 축적된 모든 긍정적 요소』라는 문구를 공동성명에 집어넣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표현에 대한 일 소 양측의 해석이 각각 달라 앞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일본측으로서는 이를 56년 공동선언의 확인,곧 두 섬의 반환인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으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성명발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동선언 인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회담결렬위기 제2라운드는 마지막 6차회담때.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일본이 무역·경제·과학기술 등의 협력의 전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일본국민의 4도 무비자방문이나 일 소 공동선언(56년) 언급은 안된다』며 구체적인 경제협력의 내용을 공동성명에 명기하도록 일측에 강력히 요구했다.
그는 이에 그치지않고 『영토문제 관련조항은 2,3줄로 끝내자』고 말해 「위협」(BLUFFING)적 태도를 보이면서 경제·협력조항의 추가를 요구했다고 외무성 소식통은 밝혔다.
당초 일본안은 「양국 국민간의 광범위하고 자유스러운 왕래를 통해 건설적인 협력이 합목적적」이라는 내용이었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를 「건설적인 협력의 전개」라는 표현으로 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으로서는 현재상태의 협력보다 진일보한 협력관계를 의미하는 뜻으로 「전개」의 문구를 넣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정상은 이를 두고 30∼40분간 격론을 벌여 결국 소련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일본이 소련에 해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재차 설명을 구했다고 전한다.
이 과정에서 양정상은 「돈으로 섬을 살 수는 없다」「살 생각도 없다」는 속마음을 서로 털어놓았으며 결국 회담은 원칙적인 선을 벗어나지 못한채 끝난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도중 소련 프라우다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이 『일본의 한 정치가가 내놓은 안 때문에 희생이 되었다』고 말해 「섬을 돈때문에 팔려고 한다」는 소련내 비판여론을 크게 의식,결국 극동시베리아 프로젝트 등 「경제협력」의 구체적 얘기를 할 수 없었다는 뜻을 비췄다.
이는 지난 3월말 방소한 오자와(소택일랑) 자민당 전 간사장이 『일 북방 4섬을 반환하면 2백60억달러를 경제원조할 수 있다』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제시한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세계매스컴이 「알래스카의 미국양도 이래의 세기적 흥정」이라고 주목한 때문이다.
이번 회담을 지켜본 일본 관리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일본에 이익을 주는 대신 소련에도 이익을 주어야한다는 「이익의 상호주의」 원칙위에서 회담을 진행시켜갔다』며 『결국 고르바초프의 외교술에 일본이 진게 아니냐』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동경=방인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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