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리포트] 특정 아파트 매물 싹쓸이 값 띄우는 '작전세력' 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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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요즘 이상한 전화가 가끔 걸려온다. "○○는 강남 아파트 몇채를 샀다"느니 "○○는 투기꾼인데 왜 TV와 신문에서 자꾸 띄워주고 있느냐"식의 얘기들이다.

이들의 전화 내용은 대충 이렇다. "강남 아파트값을 올려놓은 장본인은 특정 아파트 매물을 싹쓸이하는 전문 투기꾼들이다. 부동산 중개업자 중에는 수백명의 투자자를 확보해 한꺼번에 수백억원의 투자 자금을 동원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언론에 부동산 전문가로 얼굴을 자주 내민 사람 가운데 부동산값을 조장하는 작전세력이 적지 않다"등의 주장들이다.

종합해 보면 개인 투자수요보다 조직적인 작전세력들이 아파트값 폭등을 불러왔는데 이들을 제대로 잡기는커녕 언론에서 오히려 방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TV나 신문에 전문가로 자주 등장하고 코멘트 기사에 인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언론과 무슨 커넥션이 있지 않나 의심이 된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언론을 통해 얻은 공신력을 투자자 모집에 활용해 조직적인 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데도 왜 적발하지 못하느냐고 항변한다.

실제로 TV와 신문 등에 자주 전문가로 등장하는 사람이 자기가 관리하는 투자자들을 동원, 서울.수도권을 비롯해 천안 등지의 상대적으로 싼 아파트를 집중 매입해 값을 올려놓은 뒤 되팔고 빠져나가는 투기 수법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 이 같은 방법으로 투기를 한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라고 한다.

반신반의하던 중 한꺼번에 2백억~3백억원을 동원해 특정 아파트를 대량 매입한 뒤 가격이 오르면 하나씩 내놓는 방법으로 시장을 조작한 대규모 투기단이 최근 국세청 단속에 걸려들었다는 발표를 보고 전화 내용이 사실임을 알게 됐다.

이번에 적발된 투기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목표물이 결정되면 아무데나 손을 뻗친다. 지역으로나 가격면에서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주상복합아파트의 청약경쟁이 치열한 이유도 바로 이 같은 투기세력이 가세한 때문이리라. 이들 투기세력은 무주택자들의 이름을 빌려 집을 사고 청약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적발이 쉽지 않다. 이런 조직들이 관리하고 있는 투자자 명단에는 사회 지도층 인사가 많이 포함돼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문제는 이런 투기세력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어렵사리 잡아놓은 아파트값이 언제 다시 요동칠지 모른다는 점이다. 시장경제론자들이야 투기세력 좀 있다고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이들로 인해 시장이 왜곡된다는 것은 그만큼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도 많다는 얘기다. 투기세력들의 말을 믿고 뒤늦게 집을 산 이른바 상투를 잡은 실수요자들은 요즘 집값이 떨어져 얼마나 곤혹스러워하고 있는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더 이상 부동산 시장이 투기세력들의 손에 놀아나지 않게 해야 한다.

최영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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