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도 꼭 하루 30분씩 책 읽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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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은양이 20일 대구 수성구 신매동 집에서 서울대 수시모집 논술고사에서 1등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기뻐하고 있다. 최양은 "평소 책을 많이 읽은 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조문규 기자

"제가 정말 잘 쓴 게 맞나요? 시험 볼 때는 '이 정도면 되겠지'했는데, 나오면서 다른 애들 얘기를 듣고 저만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아 엉엉 울었는데…."

2007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논술고사에서 최고점을 받은 최나은(17.대구 시지고.사회대 합격)양은 20일 자신이 논술을 제일 잘 봤다는 소식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최양은 기자에게 "수험서 외의 책을 좀처럼 못 보는 고3 때도 하루 30분씩 꾸준히 책을 읽고 생각한 게 힘이 됐다"고 말했다. 또한 "논술은 고정된 유형도, 정답도 없어 문제를 받아들면 어떤 틀에 맞추려 하지 않고 내가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보여 줘야 한다"며 "그게 바로 논술의 매력"이라고 했다.

-논술 공부는 어디서 했나.

"고3 들어선 주로 학교 논술반에서 주 1회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주제를 쓰고 국어 선생님들의 첨삭 지도를 받았다. 고1 때부터 학교 독서토론반에서 책 읽고 발표한 것도 기본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됐다. 평소 집에서 책.신문을 읽고 부모님과 대화한 것도 도움이 됐다. 부모님은 '방에 들어가 공부해라'라고 다그치기보다 함께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해 줬다."

-논술학원은 안 다녔나.

"고3 올라가면서 다섯 달가량 학원에 다녀봤지만 큰 도움이 되진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내 생각을 들어주고 어떻게 표현할지를 함께 고민하지만 학원에서는 주로 강사의 생각을 듣는 입장이었다."

-학교 논술만으론 불안하지 않았나.

"사실 지방 학생이라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는 건 아닌지, 서울 강남 논술 얘기만 나오면 괜스레 주눅이 들어 강남 학원에라도 올라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대 수시 전형에 합격한 선배가 '서울대 출제 교수가 고교생 수준에서 생각하면 된다'고 했는데 돌아보니 전적으로 맞는 말'이라며 자신감을 북돋워줬다."

권근영 기자<young@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수험장에선 어떻게 …
"3시간 시험 … 절반은 글 개요 메모에"

-문제:'삼국사기를 다시 편찬한다고 가정하고 글을 작성하라.'

-제시문: ①'호동왕자가 낙랑국을 복속시키는 공을 세웠으나 왕비의 질투로 노여움을 사자 아버지가 근심하지 않도록 자살했다.' ②'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은 게 더 불효라고 김부식은 비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대의 한 강의실. 2007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인문계 특기자 전형 1단계 합격자 329명이 논술시험을 봤다. 서울대 논술은 3시간 동안 2500자를 써야 한다.

석 장짜리 문제지를 받아든 최나은양은 일단 안도했다. "서울대 논술 문제는 늘 종잡을 수 없다고들 하는데 이번엔 그래도 아는 이야기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최양은 "제시문은 효(孝)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큰 틀을 잡았다. 그리고 "호동왕자는 왕비의 모함에 빠졌지만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아버지를 위한다며 자살했다. 현세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 간의 갈등은 아닐까. 김부식은 현세에서 부모를 행복하게 하는 걸 효라고 생각했지만, 호동왕자는 아버지를 역사적으로 명예롭게 하고자 했다"고 마음속으로 정리했다.

이어 개요를 짰다. 본론을 둘로 나눠 서론.본론1.본론2.결론 네 부분으로 구성해 간략히 각 부분에 들어갈 내용을 메모했다. 본론 앞부분에선 호동왕자가 추구한 가치를 설명하고, 뒷부분에선 이를 비판하기로 했다. 제시문의 어떤 부분을 인용하고, 자신은 어떤 예를 논거로 내세울지를 고민했다. 이렇게 1시간30분이 지났다.

펜을 들고 답안지에 직접 써 내려갔다. 호동왕자에 대해선 "효라는 가치를 가장 우선시했으면서 부인 낙랑공주에겐 아버지를 배신하고 북을 찢어 불효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사회에서 평등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남도 지킬 수 있게 하는 건데 인간은 이기적이라 지역이기주의 등 여러 사회 문제에서 호동왕자와 같은 실수를 범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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