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 포기하는 이상한 선거전/박상하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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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0년만에 되찾은 풀뿌리 민주주의 지자제가 선거단계에서 지나친 「공명성」강조로 이상하게 변질되어가고 있다.
지자제가 성공하려면 올바른 지역일꾼이 나와 진심으로 지역을 위해 일할 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올바른 사람을 공명하게 뽑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막상 후보자가 결정되고 선거의 꽃이랄 수 있는 유세가 시작되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명선거에 대한 국민적 요청 때문인지,당국의 엄포 때문인지,아니면 유권자들의 무관심 탓인지 여기저기서 후보들이 『공명선거를 치른다』는 명목으로 담합해 합동연설회 횟수를 줄이거나 후보를 사퇴,무투표 당선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충남도의 경우 2백6개 선거구 가운데 공주군 사곡·유구·탄천면 등 23개 선거구에서 후보들이 두차례의 합동연설회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또 전국 최고의 경쟁지역인 천안시 원성1동 등 천안시내 3개 선거구에서도 합동연설회를 한차례만 실시키로 하는가 하면 온양시 온천1동 출마자들도 오는 19,20일의 이틀간 유세일정을 아예 철회키로 했다.
유권자들은 누가 어떤 사람인지 가뜩이나 몰라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그나마 유세마저 줄여 자기고장에 어떤 사람이 나왔는지 조차 모를 지경이 됐다.
촉박한 일정 때문에 인물 파악이 어려운 판에 후보들이 「법정」절차마저 포기한다는 것은 유권자들의 알 기회를 빼앗아가는 것이 된다.
물론 현행 지자제 선거법상 후보끼리 합의하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공명선거란 후보들이 공정한 선거운동을 벌이고 유권자들이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알고 판단할때 이뤄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공명에만 너무 치우친 후보들의 무분별한 담합·사퇴,당국의 지나친 공명성 강요로 오히려 30년만의 지자제선거가 「기형선거」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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