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사관의 퇴장(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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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김해 금관가야 유적의 출토품으로 해서 일본 NHK 특집방송이 임나일본부가 사실이 아님을 인정한 것은 한일 고대사연구의 획기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비단 역사의 연구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학문분야에 있어서도 그때까지의 그 분야 연구사의 업적을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고대 최재석 교수가 『백제의 대화왜와 일본화과정』에 이어 펴낸 『일본 고대사연구 비판』이란 저서는 일본 학자들에 의한 일본 고대사연구를 연구사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저서는 1945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에 활약했던 고대사학자 5인과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는 학자 16인의 주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최교수에 따르면 지금까지 수많은 일본고대사 학자 가운데 일본고대사의 진실을 은폐하고 허구의 역사를 조작하는데 그 기초를 닦은 사람을 흑판승미와 진전좌석길로 꼽고 있다.
흑판승미는 1902년부터 35년 정년퇴임 때까지 무려 34년동안 동경대학 강단에 서서 이른바 「황국사관」과 그에 따른 일본사를 강의했다. 그밖에도 그는 일본사료 편수관,조선반도사 편찬 사무촉탁,조선사 편수회고문,정창원보고 조사위원회 회원 등을 겸직하면서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귀중한 사료원에 접근,사료를 취사선택하고 편집해 역사연구의 방향을 「황국사관」과 일치하도록 했다.
그는 고대의 역사를 현대의 상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일본서기』나 『고사기』에 나오는 기록들이 학술적으로 불분명한 것이 많지만 그것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진전좌석길은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사료적 비판에 큰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는 『일본서기』가 천황과 일본국가의 권위를 확립하려는 의도를 가진 일종의 문학적 작품이며 『고사기』와 마찬가지로 장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에 의해 변조·윤색·첨삭·수식이 가해졌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진전도 고대 한일관계의 중요한 대목에 가서는 진실을 은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임나일본부의 신공황후의 삼한정벌등을 그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NHK의 특집방송은 뿌리깊은 일본사 학계의 황국사관을 무장해제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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