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수 실전 논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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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로 상상을 논증할 수 있나요?
"위 제시문과 지도를 바탕으로 철도가 경부선과 남한강 주변에 살던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서술하시오."(서울대 2008학년도 2차 예시문항 3번)
논술 시험에 상상력을 발휘하라는 문제가 나온다면 학생들은 과연 어떤 반응일까. 어쩌면 많은 학생이 이런 생소한 문제 앞에서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흔히 논술이란 엄격한 논리 체계로 이해되기에, 상상력이란 말은 어딘지 논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떤 틀에 고정된 상투적인 논술만을 써 온 학생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상상력 넘치는 글이란 애초 생각해볼 기회조차 없는 어떤 것이다. 그렇지만 상상력이란 말 앞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이 같은 어색함은, 따지고 보면 그들이 어떤 정형화된 논술 형식에만 사로잡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논술의 공간에서도 분명 상상력은 가능하다. 다만 이때 말하는 상상력이 문학 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허구적 상상력과는 조금 다를 뿐이다. 가령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가능하게 하는 판타지와 환상적 요소가 논술에서 말하는 상상력과 똑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논술에서 요구하는 상상력이란 기본적으로 엄밀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상상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그 같은 생각의 방식을 이제'논리적 상상력'이라고 이름 붙이려 한다.
논리적 상상력이란 단순한 허구나 공상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것은 더욱 논리적이며 실증적인 사고의 과정을 수반한다. 다시 말해, 주어진 조건들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어떤 의미 있는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만들어낸 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결과를 예측하고 추론해낼 수 있는 능력, 바로 그것이 '논리적 상상'의 본질이다.
사실 대학들이 논술고사를 통해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난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학생들을 선발하겠다고 밝혔을 때,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 논리적인 상상력을 함의 한다.
게다가 이처럼 논리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문제는 기실 전혀 새로운 문제도 아니다. 예를 들어 2006학년도 한양대 정시 논술고사의 경우 그것은 여느 대학과는 다른 형식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 <가>와 <다>를 참고하여 미래 사회에서 새롭게 설정될 인간의 정체성 및 인간과 기계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논술하시오."(한양대 2006학년도 정시 문제)
미래 사회의 인간의 정체성, 그리고 인간과 기계와의 새로운 관계를 전망하라는 이 문제를 처음 접한 학생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낯설다"였다. 같은 맥락에서 2005년 출제된 경희대 문제 역시 학생들에게 제시문에서 보여준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음 제시문 < A>< B>는 인류 문명의 역사에 관하여 각각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 하나의 입장을 택하여 인류의 미래를 전망해보시오."(경희대 2005학년도 정시)
이들 문제는 모두 주어진 제시문이 얘기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 특히 학생의 자유로운 사고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 문제에서,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했던 부분도 어떻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자기의 논리를 만들어 가야하는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그럼 이런 유형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상상력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상상력은 문학적 상상력이 아닌 논리에 근거한 상상력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논리는 주어진 논제와 조건들을 치밀하게 분석할 때 가능해진다.
따라서 먼저 논제를 분석하고 그것이 설정하는 문제 상황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위의 한양대 문제라면 "이성을 가진 기계도 인간인가. 이성을 가진 기계가 인간과 다르다면 인간은 과연 어떻게 재정의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새롭게 설정된 인간은 기계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문제의 핵심을 포착하고 나면, 그와 관련된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보자.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고, 왜 그것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지 가치판단도 내려봐야 한다.
그러나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주장의 논리적 근거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희대 문제를 예로 든다면,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자유다. 그것은 비관적이고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미래일 수도 있고, 자유와 희망으로 가득 찬 유토피아의 청사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이든, 자기 선택에 대한 논리적 근거는 반드시 필요하다. 왜 자기가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논리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은 비로소 논리의 힘을 얻게 된다.
논리를 통해 상상을 논증할 때, 그 글은 소설이 아니라 논술이 된다. 논리적 상상력이란, 결국 논리의 날개로 날아가는 자유로운 생각이다.

또박또박국어논술학원 고등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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