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한옥 오피스텔 안 부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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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근한 온돌방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바닥에 난방장치가 되어 있어도 침대와 가구가 들어찬 아파트 방에서는 한옥 온돌방 같은 아늑함을 느끼기가 어렵다. 이제 한옥은 먼 옛날의 전설이 되다시피 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우리 고유의 주거 형태인 한옥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게 사실이다.

'아름지기의 한옥 짓는 이야기'는 한옥을 짓는 과정을 기초공사부터 마무리 작업까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전통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한옥을 올리거나 한옥에 사는 것이 결코 먼날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책에 담긴 내용 대부분이 헌 한옥을 사서 고치려다가 결국 헐고 새로 지었던 저자의 경험이다.

지은이는 목수를 구하고 목재를 확보하는 과정 등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도란도란 들려주고 있다. 아울러 건축 관련 책에서 흔히 대충 넘어가는 비용에 대해서도 어떤 방식으로 지으면 얼마를 절약할 수 있다는 등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 불편하다는 인상이 강한 한옥의 부엌이나 화장실을 어떻게 개조하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도 꼼꼼히 설명해준다.

서울시 한옥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서세옥 화백의 부인인 저자 정민자씨는 1970년대 중반 서울 성북동에 창덕궁 연경당의 사랑채를 본뜬 한옥을 지어 지금껏 살고 있다. 이때의 한옥 짓기와 한옥을 보듬으며 30년 넘게 살아온 경험을 아름지기 재단 건물인 안국동 한옥을 짓는 데 쏟아부은 이야기를 책 전체에 넉넉하게 풀어놓았다. 전문가의 건축 이야기가 아니라 주부의 입장에서 살핀 집짓기 이야기라 편안하게 다가온다.

또 한옥에 적합한 가구 배치나 인테리어를 다룬 대목에서는 한옥이 아니라도 우리의 주거공간에 응용해볼 만한 아이디어가 많이 보인다. 화장실에도 그 흔한 욕실 슬리퍼가 아닌 검정 고무신을 배치하고, 방 크기에 맞추어 보료를 만드는 노력 등 한옥 전체의 조화를 이루어내기 위한 노력 하나 하나가 놀랍다.

로마 시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건축물과 도시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프랑스 리옹의 옛 도심은 9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의 문화재로 지정됐다. 60년대 리옹은 주민들이 낡은 도시를 떠나자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다시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자 앙드레 말로 문화상 등 문화계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건축물 보존운동을 전개했다. 뜻 있는 사람들이 건물을 사들여 그것을 리노베이션해 직접 살기 시작하면서 낡은 도심의 보존이 가능해졌다.

'아름지기의 한옥 짓는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나라에도 리옹에서와 같은 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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