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패전 실감한 휴전회담/미 의도 그대로 관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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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항복 조인체결 예행연습 분위기
3일 이라크 남부 사프완시에서 열린 다국적군·이라크군 지휘관들간의 제1차 휴전회담은 전승국의 「당당한」 모습과 패전국의 수동적 「저자세」를 다시 한번 극명히 보여주었다.
이라크는 이 회담에서 다국적군측이 내세운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하는 것 외에는 현재 달리 선택할 방안이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에 비해 승자인 다국적군측 회담 수석대표인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은 『우리가 모든 문제에 「합의」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함으로써 이 회담이 다국적군의 의도대로 관철되었음을 나타냈다.
사실 말이 양자간의 「합의」지 내용을 보면 다국적군은 일방적 요구사항을 일방적으로 내세워 이라크측의 승인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다.
슈워츠코프 장군은 『이것은 협상이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는 우리가 그들에게서 어떤 행동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말해주러 왔다』고 이 회담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말하자면 회담이라는 구색을 갖추었을 뿐이지 마치 정식으로 항복조인을 체결하기에 앞선 예행연습같은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는 셈이다.
회담장소가 쿠웨이트가 아닌 이라크영토내인 것도 다국적군측이 이번 회담을 보는 시각을 반영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슈워츠코프 장군은 『그들을 당혹하게 만들거나 모욕을 주기를 원치 않는다』고 부연설명함으로써 승자의 위세가 지나치게 드러나 이라크를 자극할 것까지는 없다는 어느 정도의 조심스러움을 표명했다.
이라크가 이번 종전을 승리라고 주장한데 비추어 「굴복」이나 다름없는 이번 회담내용이 이라크언론등에 보도되지 않는 것도 그 내심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라크는 바그다드 라디오방송을 통해 학교 개교나 방송·교통 등 전후 정상화등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 이번 회담의 대표 및 참석자,회담결과 등에 대해서는 일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제1차 휴전회담의 중요 합의사항은 세가지다.
우선 첫째는 전쟁포로들의 즉각 석방에 관한 것이다.
양측은 포로석방의 즉시 시행에 합의하면서 이에 대한 신뢰의 표시로 쌍방포로를 상징적인 숫자나마 즉시 석방할 것을 합의했다.
이라크는 현재 최소한 13명의 다국적군 포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다국적군측은 5만명 이상의 전쟁포로를 갖고 있다.
다국적군측은 또한 이라크군이 철수할때 동반해간 약 2만2천명의 쿠웨이트인들도 이 범주에 포함시켜 석방해야 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둘째는 쿠웨이트내 지뢰 및 국제수역의 기뢰부설 지점에 관한 정보를 이라크군으로부터 접수한 것이다.
다국적군이나 쿠웨이트로서는 쿠웨이트의 정상화를 위해 우선 폭발위험을 안고 있는 지뢰·기뢰의 제거가 시급한 일임을 잘알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다국적군의 이라크영토 철수는 휴전협정이 정식조인되어야만 이행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다국적군은 이라크 남부영토를 장악하고 이라크의 잠재적 위험을 계속 방지해 나가겠다는 속셈인 것이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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