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900원 밑돌 가능성 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1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내년 원-달러 환율이 900원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 이에 대비하고 있다"며 "정부가 환율 문제에 대해 시장원리만 내세우기보다 여러 해결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산업자원부가 개최한 '부품.소재 신뢰성 국제포럼'의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까지'라는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말했다. 재계 2위 그룹의 최고경영자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구체적 환율 전망을 앞세워 정부에 환율 대책을 촉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 부회장은 "원화는 강세인 데 비해 엔화는 약세가 지속돼 해외 사업장에서 도요타.혼다 경쟁 차량과 값이 비슷해지거나 오히려 역전된 곳도 있다"며 "환율 악화에 대비하기 위해 동남아.남미용 저가 소형 차량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환율 악화로 수익성뿐 아니라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경쟁력 약화 요소가 글로벌 사업장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수출이 전체 매출의 70%에 달해 국내 간판 대기업 가운데 환율 급락으로 고전하는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올 초 올해 원-달러 환율을 평균 950원으로 잡은 현대차는 최근 내년 경영계획의 기준이 되는 환율을 910~920원 정도로 잡았다. 하지만 환율이 920선까지 급락하자 이를 수정해 내년 환율을 평균 900원선으로 낮춰 잡아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한 참석자는 "김 부회장의 이날 발언은 국내 수출 대기업들이 내년 환율 전망을 얼마나 비관적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얼마나 부심하는지를 가늠케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약세가 지속돼 원-엔 환율이 9년 2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서울 외환시장의 원-엔 환율은 이날 100엔당 783.20원을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0월 27일의 771.40원 이후 최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2.1원 내린 920.5원이었다.

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