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수습이 파쟁불씨 돼서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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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정최고책임자가 특정사건에 대해 그 잘못을 시인,국민에게 사과하는 행위는 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국민의 입장으로서도 듣기 민망한 일이며 그런 행위가 자주 반복되는 사태는 결단코 막아야 될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19일 수서사건과 관련해 국민에게 행한 담화는 수서사건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조기에 수습하려는 고뇌어린 의지의 발로로 일단은 평가됨직 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과의 내용,수서사건을 보는 상황인식,그리고 개혁방안의 구현방법 등에 관한 대통령의 입장이 다소 안이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수서사건은 근본적으로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구시대적 발상과 관행을 청산하지 못한 행정부와 청와대비서실의 타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정치권은 이 사건에 연루됐을 뿐이었음이 검찰수사결과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정권 수뇌부가 자신들의 등하에서 저질러진 비행에 대한 책임의 몫을 정치권에 더 떠넘기는 듯한 자세가 오히려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사과하고,인책성 당정개편을 하고,쇄신방안을 잇따라 제시하고 있음에도 여권안에서는 분란이 일어나고 있고 국민은 이 사건 처리를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게 사태가 꾀어가는 배경에는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즉 새로운 친위세력의 대응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들은 자신들의 아전인수격 상황판단에서 수습방향을 정하고 향후 정국운용구도를 짜기 위해 이 사건을 파당의 이해를 중심으로 끌고 가려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데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이 사건의 2차적 책임대상인 국회의원들을 계파별로 안배해 5명을 구속하면서도 정작 1차적 책임이 있는 정부측은 1급공무원 2명만 구속했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작위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고 또 문제가 있음이 확연해진다.
둘째,연루혐의의 의원들은 은행구좌를 추적 조사했지만 같은 의혹을 받은 정부측 인사들은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셋째,정치권에 수사의 초점을 두었으면서도 정치자금의 위법성여부에 대해서는 우왕좌왕했다는 점이다. 공안계열세력으로 상대 계파의 덜미를 계속 잡고 있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하겠다.
장병조 비서관의 행적이나 인맥으로 봐서 이번 사건에 가장 자숙해야 될 세력이 이 사건 및 수습방향을 인위적으로 처리,대응하고 있다는 흔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가설이 사실이 아니라면 대통령이 정치권의 쇄신방안을 제시하는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것을 주도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
현재의 우리 정치구조상 대통령은 구국적 차원에서 사심없이 나서야한다. 그래야 정치권에 요구한 세가지 개혁방안이 실현되리라고 국민은 믿을 것이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위와 같은 의혹을 받지 않고 권력의 누수현상방지를 진실로 원한다면 대통령에게 직접 개혁을 주도하도록 직언하고 이 사건을 파쟁에 이용하려는 인상을 지우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정부·여당은 지금이 권력투쟁할 때가 아니라 자정노력에 맹진해야할 때임을 다시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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