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삶의 윤기」더하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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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현기영하면 4·3사건 등 제주도의 파묻힌 역사만 파헤치는 지방주의적 기질이 강한 작가로 알려져 있는 듯 합니다. 저에 대한 독자들의 이러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도시공간에서 당대의 격동을 헤치며 살아가는 여러 계층 인물들의 삶을 그린 작품을 모아봤습니다.』
작가 현기영씨(50)가 작품선집 『위기의 사내』를 펴냈다(청맥간). 이번 작품집에는 신작중편 「위기의 사내」및 기왕에 발표된 작품 중 제주도를 소재로 한 작품을 제외한 10편의 단편을 모았다.
75년 단편 『아버지』로 등단한 현씨는 4·3사건을 최초로 다뤄 필화사건을 부른『순이 삼촌』, 구한말 제주도민난인 방성칠난과 이재수난을 다룬 『변방에 우짖는 새』, 일제하 잠녀의 항일투쟁을 다룬 『바람 타는 섬』등을 발표하며 한반도 변방 제주도의 잊혀진 역사를 민중적 시각에서 복원하는 제주도작가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의 작품집 『위기의 사내』에서는 현씨의 또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 휩싸인 한 중년교사의 투쟁과 일상적 삶을 그린 중편 「위기의 사내」는 압제와 저항이라는 대립 구조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무지막지한 고문까지도 넉넉한 풍자로 묘사, 읽는 맛과 함께 인간의 속 깊은 화해로 나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50고개를 넘으니 이제 무성했던 여름한철 다 보내고 조락의 계절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입니다. 스포츠로서 운동도 그렇고 민주화로서의 운동도 그렇고 모두 젊음의 영역 아닙니까. 내 자신 스스로, 아니 자연과 삶의 사이클에 따라 이제 운동에서는 밀려난 느낌입니다. 이러한 제 육체와 정신의 전환기를 맞아 제작품을 둘러보니 문학적 상상력보다는 잊혀진 민중의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의도가 너무 강해 작품자체가 메마르지 않았느냐 하는 반성이 듭니다. 이제는 분노와 좌절의 감정뿐 아니라 서정이나 즐거움도 노래, 작품에 삶 자체의 윤기를 더하고 싶습니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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