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불만눈치에 앞질러 “성의”/걸프전 추가지원 왜 자청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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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왕 맞을매… 적극 참여가 낫다”/복구때 지분위한 “증거용 포석”
걸프전쟁을 수행하는 다국적군에 대해 추가지원키로 한 한국 정부의 결정은 규모가 1차때보다 큰 점도 주목되지만 형식상 미국 정부의 요청에 앞서 스스로 나서 모양을 갖춘데 특색이 있다.
이번 2억8천만달러의 전비 분담과 군수송단 파견 등을 내용으로 하는 추가지원 결정으로 한국의 전체지원은 지난해 우리 정부가 1차로 약속했던 2억2천만달러를 합쳐 총 5억달러에 달하고 현지에 파견되는 인력과 장비도 늘어나게 됐다.
지난번 1차분담금때도 우리 경제사정으로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 국내 여론의 주류였는데 이번에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앞서 그보다 더 많은 액수에 그것도 거의 현금으로 지원하겠다고 나선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의 분위기로 보아 추가지원을 회피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기왕 맞을 매라면 피하지 않는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셈이다.
사실 지난번 1차분담금 결정과정이나 그후 이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돈이나 하루에 십억달러단위의 전비를 사용하는 미국으로서는 우리의 지원금이 반나절의 전쟁비용도 안되는 꼴이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희망했던 것은 그렇더라도 액수에 구애받지 말고 빨리 결정을 해주도록 바랐던 것이다.
즉 걸프전쟁이 미국만의 전쟁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응징이라는 차원으로 승화되기를 바라는 미국으로서는 지원에 참여하는 나라의 숫자가 많기를 바랐으며 한미간의 전통적 우호관계로 보아서도 우리가 이 여론을 일으키는데 앞장서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액수가 결정된 이후에도 우리 정부는 예산통과라는 절차때문에 연말에야 겨우 일부를 보냈으며 의료진만 해도 늦출 수 있는데까지 늦추다 전쟁이 임박해서야 보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미국은 서운했던 것이 틀림없다.
이미 미국은 일본·독일 그리고 한국까지 포함한 우방국가들의 대 걸프전쟁 자세에 대해 섭섭한 생각을 갖고 있고 전쟁이 끝난후 어떤 형태로든 이들에 대한 「보상」을 검토할 것이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전쟁이 본격화되어 미군의 사망자 발생등 피해와 위기감이 가중되는 경우 이들 우방에 대한 미국의 감정은 극도로 악화될 것이라고 외교소식통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때 일본이 1차분담금 40억달러에 2차분담금을 90억달러로 결정한 마당에 우리의 2차액수도 2배까지는 안돼도 1차액수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안보협력·통상 등 여러부문을 균형있게 감안한다면 한국 정부가 걸프전쟁에 좀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명분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소식통들은 지적한다.
우선 이번 전쟁을 한국이 모르는 척 방관하고 있을 경우 미 정부나 의회 또는 미 여론이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미 하원 아태소위때도 의원들은 『한국의 방위를 위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이번에 한국이 미국을 위해 하는 일이 무엇이냐』며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경비의 부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 정부로서는 한국 정부가 계속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서 소련에는 3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하는 것 등이 납득 안된다는 반응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물론 이것이 현찰지원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러한 여유있는 정부가 전통우방을 거드는데 왜 인색한가에 대해 직·간접의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미국의 눈치를 알고 있는 정부로서 이번에는 앞질러 먼저 성의를 보이자는 결정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우리쪽의 사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쟁이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로서 전후처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연합국이 승리할 경우 전쟁으로 파괴된 쿠웨이트나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의 복구는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의 결정에 달려 있으며 이에 한 지분이라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참여했다는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의료진외에 수송단파견을 결정한데는 이러한 배경도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미국이 1차로 미군을 사우디로 수송할때 한국 정부가 우방으로는 처음으로 KAL기를 지원하여 미국으로부터 두고 두고 감사를 받았던 예도 있어 비교적 안전한 수송을 자원한 것으로 보인다.
2차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들은 오는 2월5일 워싱턴에서 열릴 걸프전 지원국 조정회의때 한미 양국 실무자간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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