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하기싫은 입법부/「뇌물외유」 의원직사퇴로 진화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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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세의원 자진희생 유도 안간힘/피해 최소화에 여야 내심 공감
뇌물외유사건 처리가 정치적 해결로 가닥을 잡게 됨에 따라 관련 세의원의 의원직 사퇴등 정치적 수습방안의 성사여부가 주목된다.
평민당이나 이재근·이돈만 의원 등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여권으로서는 국회전체의 함몰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그런 처방에는 야권도 불가피성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정가 일각에서는 국회가 윤리강령 제정등의 자정노력을 포함한 자구노력을 펴면서 다른 쪽으로는 사법처리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의원직 사퇴라는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몰아가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지배적 견해다.
○…평민당은 국정조사권 발동을 통해 민간기금에 대한 전면조사를 요구하는등 확전 불사의지를 천명하고 있으나 내심 정치적 해결에 기대를 걸지않는 것은 아니다.
국조권 발동요구도 따지고 보면 정치적 해결을 촉구하는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행정부·국회의 대외통상을 위한 지원에 지출했다는 무역특계자금의 용처가 뻔하고 이를 다 까발릴 경우 타격을 입는 것은 정부·여당이니 원만한 수습책을 강구하라는 압력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평민당이 내부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이재근·이돈만 의원의 처리문제다.
그 결론은 한마디로 두사람이 분위기를 파악,본인들 스스로 알아서 탈당을 하고 의원직사퇴등 여당이 요구하는 정치적 수습방안에는 『알아서 대처해 줬으면』하는 것이다.
자진탈당을 하라는 것은 당의 오명을 스스로 벗는다는 뜻도 있지만 내부적으로 이견·불만이 비등한 상황에서 징계위를 소집하는 것 자체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 총재의 지도노선에 노골적인 비판을 가해온 이재근 의원을 중징계할 경우 당내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평민당측은 두 이의원 문제에 대해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지난 26일 김영배 총무·김봉호 사무총장은 함께 이의원을 방문,여권의 회기중 불구속 방침등을 알리면서 탈당을 은근히 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기위를 소집할 경우 제명이 불가피함을 시사하면서 본인 스스로 탈당을 하는게 모양새도 좋을뿐더러 국민에게 자숙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이의원의 이번 외유도 문제지만 지난해 8월 평민당 의원직 사퇴서를 낸 직후 8천7백여만원을 받아 세명이 외유를 한 적이 있어 제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통고했다는 것.
김총무는 또 이자리에서 자신이 반대했음을 전제로 하여 김윤환 총무가 의원직을 사퇴할 경우 정치적 해결을 고려하겠다는 제의가 있었음을 간접 통보했는데 이 자리에선 일단 시간을 요구하면서 즉답을 피했었다.
사태발생후 이의원과 수차례 접촉을 가진 김봉호 총장은 『모든게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했는데 28일 김총재가 직접 이의원을 면담해 탈당을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는 사퇴문제가 직설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의원등은 자진탈당할 경우엔 사실상 의원직사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 같다.
○…민자당측은 세의원의 사퇴를 추진한다는데 대해선 일체 언급을 피하고 있다.
28일까지만 해도 세의원의 의원직 사퇴라는 정치적 수습방안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민자당측은 평민당과의 접촉후엔 오히려 함구하는 쪽.
그러나 이같은 민자당쪽의 선회는 평민당의 입장이나 의원들의 반발을 고려해 의원직사퇴를 내놓고 추진하기 보다는 막후에서 협의,처리하겠다는 생각 때문인 듯.
평민당측은 의원직 사퇴만은 피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자진탈당으로 대 국민 사과의 모습을 일단 내보이고 국조권 발동요구로 대여 공세를 강화하면서 시간을 끌다보면 의원직 사퇴에서 감등,자격정지선으로 끌어내리는 길이 열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점을 타진중이다.
그러나 여당으로서는 그 정도로 주저앉을 경우 모든 잘못과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어 의원직 사퇴요구를 철회하기는 어렵다는 것.
민자당측은 박진구 의원을 먼저 사퇴시켜 두 이의원으로 하여금 감을 잡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이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민자·평민당 두당의 꼴은 물론이고 의장까지 내세운 국회도 큰 망신을 당하게 되고 더군다나 정부입장까지 말이 아니어서 여야가 함께 국회차원에서 주변인사를 동원하는등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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