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남북정상회담 애걸복걸하는 이유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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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당의장이 "대북특사 파견과 남북 평화정상회담의 적기가 도래했다"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결단을 촉구했다고 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촉구한 사람은 정동영씨만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한명숙 총리, 이종석 통일부 장관 등 현 정부 관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혀 왔다. 급기야 정동영 전 당의장이 내년 3~4월을 시한으로 정해 북한에 정상회담을 촉구한 것이다. 시한을 3~4월로 정한 이유로 정동영씨는 솔직하게도 이후에는 대선 정국이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 정부는 정상회담을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정상회담을 통해 무얼 이룰 것인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추상적으로 남북 간 평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만 한다. 과연 50여 년 군사적 대치관계가 남북 정상 간 합의만으로 한순간에 청산될 수 있을까. 6.15 정상회담 2년 뒤 북한은 서해에서 도발했고 6년 뒤 핵실험까지 했다. 대다수 국민이 경험을 통해 정상회담이 평화를 가져다 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님을 안다.

그렇게 속고도 새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북한은 핵 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려 획책하고 있다. 이 판국에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포기를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은 핵무기 보유 명분으로 미국의 대북한 적대시 정책을 주장해 왔다. 그렇다면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대북한 적대시 정책이 소멸됐음을 우리가 약속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김정일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그런 약속을 신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의 하나 김정일 위원장이 내년 대선에서 현 집권 세력의 재집권을 돕기 위해 핵 포기 약속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청맹과니가 아닌 한 그 말을 믿을 수 있나. 우리는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의심한다. 북한은 일언반구 대꾸도 안 하는데 국가 지도자들이 돌아가면서 애걸복걸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국민들 자존심을 구겨 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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