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그리움 말하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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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부 김경봉씨의 소식을 전해들은 안드레아 라이히가 4일 북한의 아버지에게 띄운 편지(上)와 첫돌 무렵인 1959년에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46년 전 헤어진 아버지가 북한 과학계의 거물이 됐다는 소식(본지 5일자 1면)을 전해 들은 독일 베를린의 의사 우타 안드레아 라이히(48.여)가 4일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그는 "중앙일보에 소개되는 이 편지를 북한의 아버지가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편지 전문.

"사랑하는 아버지.

기나긴 세월 동안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저는 그 어떤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기다려 왔어요.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고, 또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는 46년 전 어린 딸을 머나먼 독일 땅에 남겨 놓고 떠나셨지요.

오늘은 제가 살고 있는 곳과 어른이 된 저에 대해 얘기해 드리고 싶어요. 저는 지금 베를린에 산답니다. 결혼을 해서 10살 된 아들을 두고 있어요. 저는 의사가 되었고, 남편도 의사랍니다.

그동안 저는 잘 지내왔습니다. 어머니 혼자 저를 키워 주셨고 보살펴 주셨지요. 그러나 제 삶 속에는 아버지도 분명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답니다. 자주 아버지를 생각했고 그리워했습니다. 자식을 갖게 된 뒤 아버지를 찾고 싶은 심정이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제 출생의 뿌리를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까요.

제 아들도 북한에 계신 할아버지에 대해 관심이 많고 꼭 만나고 싶어한답니다. 그 애는 모든 일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지요. 저 역시 아들에게 모든 일을 있었던 그대로 말해 줄 수 있길 바라죠.

아버지의 지금 생활에 갑자기 끼어들어 피해를 드릴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 아시죠? 그랬기에 지금껏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올 수가 있었지요.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면 저는 무척 행복할 거예요.

2006년 12월 4일 아버지의 딸 우타가"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 우타 안드레아 라이히(48.여)=1950년대 동독 유학생이었던 북한인 김경봉씨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 김씨가 60년대 초 혼자 북한에 돌아간 뒤 지금까지 편지 한번 받지 못하고 헤어져 살아왔다. 독일 베를린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라이히는 아버지 김씨와의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북한 과학원장을 지낸 김씨는 2002년까지 '자연에너지개발이용센터' 국장으로 재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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