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구두수선통(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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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나흘동안 경찰서와 구청을 돌아다니며 물건좀 찾아달라고 사정했지만 누구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더군요.』
14일 오후 서울 구로경찰서 형사계 복도.
텁수룩한 수염에 초췌한 모습의 구두수선공 김문성씨(32·서울 대방동)가 자신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는 공무원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김씨가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은 10일밤 없어진 구두수선대와 수선도구로 바로 김씨의 세식구 전재산이자 생계수단. 김씨에게는 절박한 물건들이었지만 경찰에서는 귀중품이나 고가품이 아니기 때문인지 모두들 시큰둥한 표정으로 귀찮게 여길 뿐이었다.
김씨가 부푼 꿈을 안고 서울 대림3동 국민은행 앞길에 구두수선대를 차린 것은 올해초. 다른 사람 밑에서 구두닦이 생활을 한지 10년만의 일이었다.
전북 정읍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76년 돈을 벌겠다고 상경,농방과 공장을 전전하던 일과 일 못한다고 얻어맞거나 굶기 일쑤이던 구두닦이 시절을 웃으며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의 꿈은 잠시였다. 일을 시작한지 나흘째되던 10일밤 김씨의 구두수선대와 안에 들어있던 수선도구들이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노부모가 힘겹게 보내준 1백만원과 매제의 도움으로 어렵게 마련한 것들이었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 지더군요.』
김씨는 우선 관할 구로경찰서에 도난신고를 했지만 『누가 가져갔는지 확인해 보라』『단속반이 철거했을지도 모른다』는 말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막막해진 김씨는 다음날 짚이는게 있어 영등포일대 구두닦이들의 친목단체인 「미화협회」의 회장을 찾아갔다.
회장은 따져묻는 김씨에게 『우리 영역을 침범해 부숴버렸다』『구청에 실어다 놓았다』는 등 횡설수설했다.
김씨는 곧바로 관할 영등포 구청으로 달려갔다. 그렇지만 구청직원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당사자끼리 해결하든가 법대로 처리하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다시 경찰서를 찾아가 보았지만 『이런싸움에 개입할 수 없으니 개인적으로 해결하라』며 냉랭한 반응이었다.
『부자들에게는 하잘 것 없는 것들이지만 저에게는 생명과 같이 귀한 물건들입니다.』
울먹이며 돌아서는 김씨의 어깨너머에는 「서민생활 침해사범 단속반」이란 팻말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김남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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