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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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바람 없는 날 서울의 빌딩숲은 항상 희뿌연 안개속에 잠겨 있다. 일요일 근교의 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도심과 변두리를 가릴 것 없이 도회 전체가 짙은 회갈색 구름에 뒤덮여 있음이 쉽게 발견된다.
중앙일보 지난 11일자 사회면 머리에 실린 사진은 이런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대기의 자연적인 대류현상이 빚어낸 운해가 아니라 유독가스의 「웅덩이」에 빠져있는 도시의 흉칙한 참 몰골임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극심한 대기오염과 지표면의 기온상승이 겹쳐 발생한 이른바 런던형 스모그라는 사실이 환경처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자동차의 무한정 증가에 겹쳐 겨울철의 무연탄·경유·벙커C유 등 난방연료 사용이 급격히 늘어난데다가 공중의 대기보다 지표면의 기온이 높은 기온역전현상까지 일어나 안개와 유독가스가 흩어져 없어지지 못하고 도시를 뒤덮고 정체돼 있는 것이다. 높은 습도와 아황산가스·질소산화물·먼지 등이 혼합된 이 유독성 안개현상을 런던형 스모그라고 하는 것은 유해가스의 농도가 좀 덜하다 뿐이지 지난 52년 일시에 4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런던의 대기오염현상과 그 원인과 성격이 꼭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자료는 최근 전국에 내린 눈이 정상치의 10배가 넘는 산성도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가 사용하는 화석연료의 증가가 빚어낸 생활환경의 파괴란 점에서 스모그와 다름없는 현상이다.
런던형 스모그나 산성눈의 주범은 아황산가스와 질소산화물이다. 이것들은 모두 석탄·석유 등 자동차·공장·가정에서 사용하는 연료에서 발생되는 유독가스들이다. 서울시청 옆에 설치된 공기오염전광판만 보아도 1년내내 장기기준치(0.05PPM)를 넘나들고 있으니 그밖에 오염이 심한 지역의 오염도는 측정을 안해도 어느 정도 심할지 짐작할만 한 것이다.
장기기준치의 아황산가스를 1년이상 마시면 각종 호흡기질환이 발생하게 돼 있으며 단기 기준치(0.15PPM)에선 1시간만 운동을 해도 폐기능장애나 기관지 천식등을 앓게 된다고 한다. 모든 공해문제와 마찬가지로 대기오염 문제도 인간들이 과도하게 편의와 안락을 추구하다가 스스로 빠져든 함정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대기오염,그중에서도 특히 아황산가스의 오염을 줄이는 방법은 그것을 적게 방출하는 청정연료로 대체하는 수 밖에 없다. 벙커C유나 경유 또는 유황성분이 많은 휘발유를 천연가스(LNG)나 탈황휘발유로 바꿔야 한다. 여기에는 우선 막대한 비용의 지출이 소요된다. LNG는 벙커C유보다 값이 두배나 비싸고 경유 역시 벙커C유보다 1.7배가 비싸다.
기름 값의 차이에 겹쳐 연료대체에 따른 시설의 대체에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편의와 안락을 값싸게 추구하기 위해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일보다 더한 어리석음과 무모는 없을 것이다. 자연파괴는 먼 장래의 후손에게까지 그 악영향이 미친다는 점에서 우리의 각성과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는 것이다.
비용문제 뿐만 아니라 정부당국의 강력한 의지와 행정력도 요구된다. 환경처는 작년 9월을 기해 모든 아파트와 대형 건물의 연료를 LNG나 저황경유를 쓰도록 한다는 방침을 세운 바 있으나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물론 수요자들의 협조가 모자라는 점도 이유의 일부는 되겠으나 관공서나 공공기관의 연료대체를 실행하지 못한 것은 정책당국의 결단력 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기관의 연료를 청정연료로 바꾸는 것은 국민에 대한 수범이란 의미에서도 가장 앞서서 실천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환경처가 내년부터 실시하기로 한 대기오염경보제에 우리는 한가닥 기대를 갖고 싶다. 각종 매체를 통해 현재의 대기오염실황을 국민에게 알리고,오염도가 일정기준을 넘어설 경우 주민들에게 행동수칙을 제시하거나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대응조치를 취하는 방법은 이미 미국이나 일본등지에서는 실시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한 성패의 열쇠다. 이 제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오염의 실태를 전반적으로 정확하게 측정하는 장치가 도시의 주요오염발생지에 설치돼야 함은 물론이고 이것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국민 각자의 경각심이 발동되도록 사전 계몽과 교육이 있어야 한다.
도시를 뒤덮고 있는 회갈색 유독가스 안개와 독한 산성눈이 다른 어느 누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탓이란 투철한 인식 아래 우리 각자가 이 무서운 유독성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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