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경마 「재결위원」 채용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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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모든 스포츠 경기는 페어플레이가 생명이다.
제 아무리 인기종목이라도 선수들이 반칙을 일삼으면 팬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되고 또 선수들이 열심히 한다해도 심판의 판정이 공정하지 못하면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특히 경마와 같이 관중들이 돈을거는 경기는 선수(기수)의 행동, 심판의 판정 하나하나가 승부와 직결, 자칫 잘못하다간 엄청난 사회적 파문도 가져온다.
국내에는 아직 그런 일이 없었으나 외국에서 마피아 등 폭력조직에 의한 승부조작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경마경기에서 기수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경기결과에 판정을 내리는 심판은 어느 누구보다도 막강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다.
한국 마사회 채용규 재결위원(55)은 바로 이같은 일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6명밖에 안되는 사람중 최고참이다.
『출발선상에서 말들이 신호와 동시에 제때 발주했는지 또 경기 도중 말이 곧바로 가지않고 좌우로 달려 옆의 말을 방해하지 않았는지를 살핍니다. 그러나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일은 기수가 경기 도중 과연 최선을 다했는지를 감시하는 것입니다.』
말이 제 컨디션이 아니었을때는 말을 조련시키는 조교사에게, 기수가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않았을때는 기수에게 책임을 물어 경기를 페어플레이로 이끌어가는 것이 그가 맡은 주요 임무다.
그가 경마와 인연을 맺게 된것은 지난 74년. K대학 경제학과를 졸업, 건설회사에 근무하다 부친 때문에 경마와 인연을 맺었다.
부친 채일묵씨(73년 작고)는 오늘날의 한국 경마를 발전시킨 공로자로 일제시대때 일본에서 기수생활을 하다 해방 후 한국 마사회에 몸담아 이사로 정년퇴직한 후에도 스스로 재결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경마의 기틀을 잡았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부친 일을 돕던 용규씨는 가업을 이어받은 2대 재결위원이다.
그는 현재 「재결위원」뿐 아니라 핸디캐퍼의 일까지 겸하고 있다.
일반에게는 다소 생소한 핸디캐퍼란 마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1천4백여마리의 경주용 마필가운데 경마에 출전할 말이 뽑혀지면 능력이 뛰어난 말(기수 포함)에는 납덩어리로 중량을 얹혀주는 일이다.
이래야만 승부를 예측할 수 없어 경기가 박진감을 더할 수 있다.
『재결의원이나 핸디캐퍼는 말과 10년 이상 살아야 자격요건이 생깁니다. 10년 이상이 돼야 말의 성질도 알고 경기의 흐름도 읽을 줄 알게 됩니다.』
그는 경기를 공정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기수나 조교사와의 접촉을 스스로 끊고 있다.
대인관계가 잦아지면 부정이나 편파성의 우려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보너스를 제외한 한달 봉급이 1백50만원이라면서 『월급보다 말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자세가 이 직업을 택할 수 있는 자격요건』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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