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디치 IT판' 드론축구 바람 타고, 전주 세계로 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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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7호 22면

월드컵까지 여는 드론축구

전주월드컵경기장 내 드론축구 체험장에서 열린 경기 모습. 리본이 달려 있는 스트라이커 드론볼이 도넛 모양의 골문을 통과하면 1점을 얻는다. 최기웅 기자

전주월드컵경기장 내 드론축구 체험장에서 열린 경기 모습. 리본이 달려 있는 스트라이커 드론볼이 도넛 모양의 골문을 통과하면 1점을 얻는다. 최기웅 기자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부스는 대한민국 전주시에서 차린 ‘드론축구’(Drone Soccer)였다. “애애애앵” 모터음과 화려한 불빛을 내뿜는 10개의 드론볼이 날아다니고 부딪치는 장면이 관람객의 시선과 발길을 붙잡았다. 로이터·CNN·폭스 등 70여개 언론사들이 “퀴디치(영화 ‘해리 포터’ 속 빗자루 경기)의 IT판. 놀랍고 재미있다”고 소개했다.

드론축구는 2017년 전북 전주시에 있는 캠틱종합연구소가 개념과 규칙, 드론볼 디자인과 제작 등을 총괄해 만들었다. 한 팀 5명이 한 개씩의 드론볼을 조작해 경기를 치른다. 리본이 달려 있는 스트라이커 드론볼이 지름 60㎝의 도넛 모양 골문을 통과하면 골이다. 수비 팀 드론들은 골문 앞에서 방어막을 치고, 공격 팀 드론들은 약속된 플레이로 수비수를 끌어내거나 수비수와 충돌하면서 스트라이커 드론볼이 통과할 공간을 만든다. 치열한 몸싸움과 머리싸움이 펼쳐지는데, 미식축구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드론볼끼리 충돌해 깨지거나 추락하기도 한다.

경기는 3세트로 진행되는데, 매 세트(3분) 득점이 많은 팀이 이긴다. 드론에 장착된 배터리는 3~4분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워낙 빠르고 격렬하게 경기가 진행돼 ‘배터리 체력관리’가 중요하다. 배터리 방전이나 충돌로 인해 추락한 드론볼은 그 세트에 더 이상 뛸 수 없기 때문이다.

드론볼끼리 충돌해 깨지거나 추락도

지난 5월 열린 국제드론축구제전에서 골을 넣은 한국 대표팀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캠틱종합기술원]

지난 5월 열린 국제드론축구제전에서 골을 넣은 한국 대표팀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캠틱종합기술원]

전주시는 CES 현장에서 내년 10월 열리는 ‘2025 전주드론축구월드컵’ 개최 선포식을 가졌다. 전 세계 32개국 2500여명의 선수단이 함께할 드론축구월드컵을 통해 전주시는 드론축구의 메카임을 공식화하게 된다. 대회를 위해 전주월드컵경기장 인근에 드론스포츠복합센터를 건립한다. 지난 3월 첫 삽을 뜬 이곳에는 1000석의 관중석을 갖춘 드론축구 전용구장이 들어선다.

드론축구월드컵은 지난해 6월 창설한 국제드론축구연맹(FIDA)이 주관한다. 현재 19개국이 가입돼 있는 FIDA의 초대 회장은 노상흡 캠틱종합기술원장이 맡았다. 노 원장은 “우리 기술과 아이디어로 만든 드론축구가 신개념 스포츠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 6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린 WMF 국제 가전 박람회에서도 드론축구가 인기몰이를 했다. CES에서 드론축구를 처음 접한 WMF 창업자가 ‘유럽 축구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드론축구를 소개하고 싶다’며 한국 드론축구 팀을 초청했다”고 말했다.

노 원장이 드론축구의 개발 과정을 소개했다. “드론은 일반적으로 수송과 촬영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드론 관련 게임이나 스포츠는 장애물을 피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는 ‘드론끼리 부딪치는 쪽으로’ 역발상을 했다. 또 드론은 위험하고, 야외의 넓은 공간이 필요하며, 조작자 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우리는 드론을 안전하게 감싸고, 그물망을 친 실내에서 여러 명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드론볼을 만드는 과정도 치열했다. 드론볼의 성패는 드론을 감싸는 셀(외피)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데, 금형·가공·열처리·주조 분야에서 100여 명의 전문 인력을 보유한 캠틱이 핵심 기술을 개발했다. 노 원장은 “카본(탄소)은 결합 부분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합성수지인데 다양한 재료를 어떻게 블렌딩 하느냐가 핵심이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너무 무르지도 않게 비율을 잘 맞춰야 하고, 가벼우면서도 잘 깨지지 않고 비행성도 좋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 룰도 계속 진화했다. 나세영 캠틱 경영지원실장은 “처음엔 선수와 볼이 따로 있었는데 드론들끼리 몰리면서 프로펠러 바람의 영향으로 볼이 자꾸 추락했다. 결국 선수 한 명이 공이 되는 쪽으로 틀을 바꿨다. 또 아무 드론이나 골문을 통과하면 골로 인정했다가 스트라이커 드론 하나만 득점할 수 있게 바꿨다. 그랬더니 비로소 전술이 생기고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2500개 팀 매년 30개 넘는 전국 대회

드론볼을 점검하고 있는 미국 선수들. [사진 캠틱종합기술원]

드론볼을 점검하고 있는 미국 선수들. [사진 캠틱종합기술원]

현재 전국에 2500여 개 드론축구 팀이 있고, 매년 30개가 넘는 전국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와 대한드론축구협회가 ‘늘봄학교 미래형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어 드론축구가 초등학생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지난 5월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드론박람회에서는 드론축구가 단연 주연이었다. 내년 월드컵을 앞두고 프레 월드컵(Pre World cup)으로 열린 국제드론축구제전은 21개국 1500여 명이 출전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나세영 실장은 “한국과 일본이 맞붙은 경기는 실제 축구 한·일전을 보는 듯했다. ‘대∽한민국’과 ‘닛폰, 닛폰’을 외치는 열띤 응원전도 볼거리였다”고 당시 분위기를 소개했다.

대한민국이 종주국이 된 드론축구는 첨단과학과 스포츠의 창의적인 결합, 드론볼을 비롯한 장비와 시스템 수출, 일자리 창출 등 큰 확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골칫거리도 있다. 짝퉁 드론볼이 대량 유통되고 급조한 대회가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있다. 대한드론축구협회 간부가 협력업체로부터 사업비를 개인 통장으로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전주시가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모처럼 싹이 돋은 ‘미래 먹거리’가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관심과 감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범기 시장 “드론축구 종주 도시, 전주의 획기적 변화 이미 시작”

우범기 전주시장은 “드론축구를 통해 전주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우범기 전주시장은 “드론축구를 통해 전주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전주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라고 말합니다. 역사·문화·전통에 드론축구와 같은 미래 첨단 산업이 결합되면 전주는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갖춘 도시로 거듭날 거라고 확신합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전주시청에서 만난 우범기 전주시장은 ‘2025전주드론축구월드컵’이 ‘조용한 도시’ 전주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거라며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주드론축구월드컵 준비 상황은?
“금년 1월 미국 CES에 가서 내년에 전주에서 드론축구월드컵을 연다는 걸 공식 발표했다. 드론스포츠복합센터를 착공해 내년 2월쯤 완공할 예정이다. 지난 5월 인천에서 프레 월드컵으로 열린 국제드론축구제전도 성황리에 끝냈다.”
CES에서 드론축구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나도 그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깜짝 놀랐다. CES가 세계 최대 박람회지만 좀 정적인 분위기인데 드론축구장에서는 드론볼의 모터 소리와 화려한 불빛, 그리고 드론볼들이 휙휙 날아다니는 다이내믹한 장면에 관람객이 3만명이나 모였고, 70개 이상 외신이 드론축구를 소개했다고 한다.”
CES에서의 성공이 드론축구월드컵에 대한 기대를 키운 것 같은데.
“시범경기가 눈길을 끌었고 홍보관도 잘 꾸며져 있어서 대접을 잘 받고 왔다. 미국과 캐나다에 유소년용 드론볼을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는 성과도 있었다. 잘 준비해서 월드컵을 멋지게 치르는 일만 남았다.”
드론축구월드컵을 통해 전주시는무엇을 얻나.
“전통 도시인 전주가 미래지향적인첨단 산업의 도시도 될 수 있다는 걸 알리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드론축구는 한번 보면 빠져드는 매력이 있고, 특히 손을 잘 쓰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매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드론축구월드컵이 전주시의 산업·홍보·관광 및 일자리 창출에 큰 효과를 가져다줄 거라고 본다.”
전주가 드론축구의 메카가 된 이유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다. 드론이 단순히 이동이나 촬영 수단을 넘어서 스포츠와도 접목될 수 있을 거라는 포인트를 잘 잡은 것 같다. 이 부분을 선점하고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규칙도 만들고 공인구도 만들면서 전주가 드론축구의 종주 도시가 된 것이다. 앞으로 드론을 다른 분야의 스포츠에 접목하는 연구에도 적극 투자하겠다.”
QR코드를 찍으면 드론축구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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