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원하는 ‘미스터 프레지던트’, 답은 영화에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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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7호 20면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지난 바이든 VS 트럼프 TV토론에서 바이든이 식은 땀을 흘렸다거나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눈의 초점과 총기가 사라졌다는 얘기가 나올 때, 그래서 후보를 교체하고 ‘판을 바꾸자’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영화 ‘데이브’가 겹쳐진다. 영화에서는 실제로 대통령을 (일시적이나마) 갈아 치우기 때문이다. 1993년, 무려 30여년전 영화다. 코미디를 주로 만들던 이반 라이트만 감독이 만들었다. 케빈 클라인이 1인2역을 하는데 현 대통령은 미첼, 그의 대역 이름이 데이브이다. 수잔 서랜든은 영부인 앨런 역할이다. 여기에 비서실장이 권력을 노리고 가짜 대통령 데이브의 맞수로 등장하면서 온갖 비리에 얼룩진 미국 대선 캠페인이 벌어진다.

고질적 금권제도, ‘제3후보’ 등장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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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이브’에는 당시로서는 미래 권력인 빌 클린턴 시대의 모든 정치적 스캔들이 들어가 있다. 클린턴의 성 추문, 이른바 지퍼 게이트를 예견하고 있다. 젊고 진보적인 대통령의 엽색 행위를 전제하고 있는 내용이다. 미첼은 특정 모임에 가는 대신 정부(情婦)와 밀회를 즐길 요량으로 자신과 닮았다고 알려진 데이브라는 남자를 참석시킨다. 그러나 하마터면 복상사를 할 뻔하고 뇌졸중을 일으켜 코마 상태에 빠진다. 데이브는 얼떨결에 대통령이 되는데 그를 쥐고 흔드는 것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비서실장 밥 알렉산더(프랭크 란젤라)다.

결국 데이브와 밥 알렉산더는 미 대선에서 격돌하게 된다. 영화 ‘데이브’는 조지 H W 부시를 꺾고 오랜만에 민주당에게 권력을 되찾게 해 준 청년 빌 클린턴을 향한 불안한 심리를 내포하고 있었던 작품이다. 젊은 그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변질되지는 않을까. 선거 과정은 정말 깨끗했을까. 극심한 마타도어나 지나친 네거티브 전략이 난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의 불길한 예언은 실제로 4년 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미국 대선을 절묘하게 풍자한 영화는 2006년 영화 ‘맨 오브 더 이어’이다. 할리우드 정치 풍자극의 대부 격인 배리 레빈슨이 만들었고 로빈 윌리엄스와 로라 리니, 크리스토퍼 월켄과 제프 골드브럼 등이 나온다. 영화 속 주인공 톰 돕스(로빈 윌리엄스)는 스탠딩 개그맨인데, SNL같은 수위가 높은 라이브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엄청 인기다. 어느 날 방청객으로부터 당신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그는 다음 날부터 엄청난 양의 대통령 출마 청원 편지에 시달린다. 매니저인 잭(크리스토퍼 월켄)은 오랜 세월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현명한 노인답게 통찰력을 발휘한다. 톰 돕스를 무소속 후보로 나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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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돕스가 유세 현장과 TV토론에서 인기를 끈 것은 물론 그가 말을 잘하고 유머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 속 국민들이 열광한 것은 그의 선거 캠페인, 정치적 슬로건이다. 그는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제가 대통령직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양당 정치에 진력이 났기 때문입니다. 공화당에 지쳤고 민주당에 지쳤습니다. 둘은 같은 당입니다. 거의 다른 게 없습니다.” 2006년의 영화 속 톰 돕스는 2020년 민주당 경선에서 바이든에게 패한 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을 연상시킨다. 혹은 샌더스처럼 역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블룸버그 통신의 창업자이자 뉴욕시장 출신인 마이클 블룸버그를 떠올릴 수도 있다. 미국 국민들은 실제로 지난 20년 가까이 민주-공화 양 진영 모두에 진저리를 치고 있고, 극단적인 진영 싸움에도 지친 상태다. 현실 정치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인들이 영화 ‘맨 오브 더 이어’의 톰 돕스처럼 제3의 후보가 당선되는 기적을 현실에서 체험해 내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 선거의 고질적인 금권 제도 탓이다. 미국 선거는, 어느 쪽 후보가 됐든 누가 정치후원금을 더 긁어 모으느냐, 그리하여 어마어마하게 큰 땅덩이인 미국에서 선거 캠페인 광고를 물량 공세로 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결국 미국 선거는 돈이 결정하는 것이며, 대통령이든 상하원 의원이든 자본가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들이 후보 시절의 참신한 외교정책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이든 당선 이후에는 늘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미국 선거에 유대인들의 막대한 자금이 ‘투자’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이 4개월 정도 남은 지금, 유대인계 카지노 재벌 셸던 애덜슨의 미망인 미리암이 트럼프에게 1억 달러를 제공한다고 발표되자 선거 판도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맨 오브 더 이어’에서 톰 돕스도 이를 의식한 듯 1960, 70년대의 히피와 록밴드처럼 전미 버스투어 유세로 또 한번 돌풍을 일으킨다. 그는 선거 광고에 돈을 쓰는 대신 직접 버스를 타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다. 이 신선함이 그를 대통령직에 올려 놓는다. 그러나 영화는 그 과정 역시 영화적 신기루가 될 수 있음을 고백한다. 톰 돕스의 인기가 최고조에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근소한 차이로 양 후보를 누를 수 있었던 건 영화 속 투표 시스템인 터치 스크린 방식의 집계 오류 때문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영화 속에선 양당 체제 종언 고한 듯

아마도 영화라서 가능한 얘기겠지만 톰 돕스는 오랜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위대한 결심에 이른다. 암으로 죽어가는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이고 지금은 비서실장인 된 잭도 충언을 한다. 톰 돕스는 SNL에 나간다. 그리고 여성 개그맨과 희대의 섹스 대담을 나눈다.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톰 돕스는 이렇게 답한다. “스타와는 달리 정치인들에게는 여성들이 팬티를 벗어서 던지지는 않더군요.” 그러자 여성 개그맨이 톰에게 말한다. “저는 차라리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제 팬티를 던져 주겠어요. 그거라도 입고 다니라고 말이지요.”(당시 스피어스가 공개 석상에 노 팬티 차림으로 나타나곤 했던 일을 풍자한 것이다.) 한참을 낄낄대던 대통령 톰 돕스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신의 당선이 전산 오류 때문임을 고백하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한다. 미국의 온 시청자들은 이번엔 톰 돕스에게 ‘조용히’ 열광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백악관 경호실장은 대통령직을 사임한 톰 돕스에게 다가와 굳이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른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당신을 모실 수 있어서 진정으로 영광이었습니다.”

영화는 미국이 원하는 대통령의 이미지가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넘어 솔직하면서도, 자신의 과오와 결점을 인정하며, 돈에 휘둘리지 않고 서민 대중들과 같은 수준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아직 그건 채 완성되지 않았거나 당분간 완성되기 힘든 일이라고 우회적으로 고백한다.

영화는 대리만족의 예술이며, 아무리 환상이라 하더라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게 하자는 취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맨 오브 더 이어’는 약 20년 전 영화이지만 지금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 귀감이 된다. 영화가 20년 앞서 있는 셈이다. 이 영화는 한국 미개봉작이다. 시중에서 어렵게 DVD를 구할 수 있지만, DVD 플레이어를 구하기가 더 어렵다.

미국 대선 시스템, 특히 승자독식 체제의 명암에 대한 영화로는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2012년 영화 ‘스윙 보트’만한 것이 없다. 텍사스와 더불어 공화당의 아성이라는 뉴멕시코 주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투표 촌극을 그린다. 뉴멕시코 주는 선거인단 5명을 차지할 수 있는 곳인데, 영화 속 공화-민주 후보는 기가 막히게 득표수에서 타이를 기록한다. 주인공 버니는 자신의 표가 갑작스런 정전으로 무효가 되자 열흘 후 재투표의 기회와 의무를 갖게 된다. 양당 후보는 버니의 한 표를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무식한 실직자에 불과했던 버니는 생애 최초이자 최고로 미디어의 포커스를 받게 되고 전국적 인물이 된다. 버니는 그 과정에서 정치적 각성을 한다. 그가 던진 표는 과연 누구에게 갈 것인가.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다소 복잡하다. 복잡다단한 정치 역사 탓이다. 특이한 선거인단 제도는 뉴욕과 LA간에 시차가 존재할 만큼 너무 큰 나라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은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미국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와 바이든 중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미국 국민들 다수의 생각은 그 둘 중 하나에 몰리고 있는가, 아니면 톰 돕스처럼 새로운 인물을 원하고 있는가. 적어도 영화를 보면 양당 체제는 진작에 종언을 고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고민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 답이 있다. 선거는 영화이고 영화는 선거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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