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그날 청년은 4만보를 걸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97호 30면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언젠가 ‘좋은 이웃’이라는 주제로 짧은 글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이웃’의 사전적 정의는 ‘가까이 사는 집 또는 그런 사람’이다. 아파트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같은 때, 그것도 좋은 이웃이라니… 당최 누구에게 좋은 사람이 돼야하나 대상이 막연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였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인은 연탄과 달리 지극히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너’를 질책했다. 연탄재 같은 희생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소소한 일상에서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이기적인 사람은 되지 말자고 글을 마무리했었다.

이후 소소한 이기심을 읽는 버릇이 생겼다. “나쁜 사람”이라 손가락질할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 불편할 수 있는 뻔뻔한 이기심의 현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덜 이기적인 이웃만 되어도
폭염 노출된 청년 불행 막을 수 있어

한때 공중화장실 앞에서 여친의 가방을 들고 서 있는 젊은 남친을 보며 “공주님 호위무사도 아니고 너무 저자세군” 코웃음 치곤했다. 손바닥만 한 가방을 굳이 남친에게 맡긴 그녀의 심리도 이해불가. 그런데 요즘은 “그럴 수밖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화장실 개수대 주변이 온통 물바다여서 작은 가방 하나 올려놓을 자리가 없다. 손을 씻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물이 튈 수밖에 없다 치더라도, 손에 묻은 물방울을 개수대 밖 주변까지 튀게 하는 심보는 뭘까. 청소 아주머니가 유리 물기를 닦아내는 도구인 스퀴즈를 개수대 주변 청소에 이용하는 이유다.

처음부터 조심해서 개수대 안으로만 물기를 털었다면, 손의 물기를 닦은 휴지로 개수대 주변 물기까지 살짝 닦아낸다면, 어차피 쓰레기통에 버릴 휴지는 한 번 더 재활용하고, 다음 사람에게 축축한 불편함은 주지 않을 텐데. 내 뒷사람은 나 몰라라 하는 이기심은 이런 작은 배려를 모른다.

대형마트에서 눈살 찌푸리게 하는 풍경은 얌체 같은 ‘카트 반환’이다. 다 사용한 카트는 ‘카트 리턴’ 장소까지 옮겨두는 게 맞다. 제일 좋은 건 마트 입구에 있는 카트 집합장소로 반환시키는 거다. 그러면 직원들이 주차장 곳곳을 다니며 무거운 카트들을 모아 옮길 필요가 없어진다.

하지만 얌체 짓 하는 사람들이 꼭 있다. 카트 가득 채웠던 물건을 차로 다 옮긴 다음,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차에서 가장 가까운 기둥에 카트를 불쑥 세워놓는 사람들. 주차장 한가운데 버려놓지 않고 그나마 기둥 어딘가에 붙여 세워놓는 게 그들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이다.

그다음은 불 보듯 뻔하다. 마트 직원들이 숨바꼭질하듯 기둥마다 숨은 카트들을 찾아 밀고 끌면서 입구까지 모두 옮겨야 한다. 여러 사람이 각각 하나씩만 제대로 옮기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한 사람이 모두 옮기려니 얼마나 힘들까.

지난해 6월 19일 저녁 하남시에 있는 코스트코 주차장에서 카트 정리 업무를 하던 30대 청년 노동자가 쓰러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낮 최고기온은 33도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고 고인의 업무는 매시간 200개 안팎의 카트를 모아 매장 입구로 옮기는 일이었다. 고인의 아버지에 따르면, 그는 숨지기 이틀 전인 토요일에 집에 오자마자 대자로 뻗으면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나 오늘 4만3000보 걸었어.” 자동차부터 마트 입구 카트 리턴 장소까지 가는 몇 걸음을 귀찮아한 누군가의 이기심 때문에 젊은 청년은 폭염에 노출된 채 무거운 카트를 끌면서 4만3000보를 종종걸음치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올해의 폭염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또다시 이런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는 노동자 보호 제도를 재정비해야 하고, 기업 역시 노동자의 일터 환경을 더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인이 지적한 수많은 ‘너’, 우리는 좀 덜 이기적인 이웃이 됐으면 좋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