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안 배우고, 자도 없이…저 큰 대성당 지었다, 중세의 비밀 [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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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공학
빌 해맥 지음
권루시안 옮김
윌북

현대의 초고층 빌딩도 놀랍지만, 수백 년 전 지어져 그 아름다움을 지금도 뽐내는 건물들도 놀라움을 안겨준다. 현대와 같은 과학기술이나 장비가 없던 시절 과연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다. 이 책 『삶은 공학』의 첫머리에 나오는 13세기 프랑스 건축 생트샤펠 대성당 얘기는 그 힌트를 준다. 미국의 공학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이런 중세 대성당 건축을 지휘한 도편수들은 수학이나 기하학을 배우지도, 숫자가 새겨진 자를 쓰지도 않았다.

프랑스 패럴림픽 멀리뛰기 선수 디미트리 파바드가 2024년 파리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앞두고 지난 5월 파리의 생트샤펠 대성당에서 포즈를 취하며 점프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프랑스 패럴림픽 멀리뛰기 선수 디미트리 파바드가 2024년 파리올림픽 및 패럴림픽을 앞두고 지난 5월 파리의 생트샤펠 대성당에서 포즈를 취하며 점프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대신 경험칙이 있었다. 도편수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적용되고 다듬어져 구전으로 전해지는 법칙들, 예컨대 석재 아치의 높이에 따라 그 무게를 지탱하려면 벽의 두께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지 비례 법칙을 알고 있었다. 정확한 두께는 이 책이 그 구체적 설명을 전하는 대로, 자가 아니라 끈을 써서 결정했다. 또 석재의 품질 등에 따라 벽의 두께를 얼마나 달리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책 '삶은 공학'에 수록된 이미지. [사진 빌 해맥]

책 '삶은 공학'에 수록된 이미지. [사진 빌 해맥]

저자는 이를 비롯해 다양한 시대의 사례를 통해 공학적 방법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그에 따르면 공학적 방법과 과학적 방법은 목표부터 다르다. 후자가 우주에 관한 진리를 드러내려 한다면, 전자는 실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래서 최고의 공학적 성과는 문제 자체가 아니라 사회가 판단하는 것. 공학적 방법은 물질적 자원, 사회적 필요, 현재의 기술력 같은 제약 조건에 대한 대응이고, 해당 사회의 문화나 공학자의 선택·편향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쉬운 예가 애초에 평균적인 남성 체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충돌 시험용 인체 모형. 요즘은 과체중 남성, 성인 여성, 연령별 어린이 등으로 구성된 '가족' 모형도 등장했다. 자전거도 예다.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설계된 자전거의 치수를 축소한다고 여성에게 맞지는 않는다. 상반신과 하반신의 비례, 근육 질량의 중심 등이 다르기 때문. 1980년대 조지나 테리가 설계한 여성용 자전거가 선풍적 인기를 끈 비결도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인종, 성별 등에 따른 배제를 문제 해결에 대한 참여의 제한이란 점에서도 비판한다. 공학과 과학이 복잡하고 번거로운 계산 등을 도맡았던 여성들을 '지적 뜨개질'이라는 식으로 폄훼한 역사, 반대로 이렇게 실무적 지식을 쌓은 여성 공학자가 프로젝트를 지휘하며 큰 성과를 이룬 역사도 소개한다. .

저자는 공학적 방법을 '불완전한 정보를 가치고 경험칙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 좀 더 다듬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칙을 활용하여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불완전한'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같은 말은 부정적 뉘앙스가 아니다. 과학적 혁신이 불확실한 영역 대비 확실한 영역을 넓혀간다면, 꾸준히 그 경계에서 일하는 것이 공학자라는 것. 저자의 이런 시각은 흔히 공학을 응용과학이라고 여기는 데 대한 비판과도 연결된다. 책에는 과학적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요한 공학적 성과를 이루거나, 지금도 과학이 그 원리를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의 특징을 파악해 공학적 활용이 가능하게 한 것을 비롯해 여러 공학자가 소개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공학의 성과를 발명가 한 사람의 몫으로 돌리거나, 순간적 영감의 산물로 보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했다'는 식의 얘기가 대표적. 책에 따르면 최초로 상품화된 전구는 에디슨의 것이 아니었다. 전자레인지도 있다. 흔한 일화는 레이더 장비 주변을 지나던 공학자가 주머니 속 캔디 바가 녹는 것을 보고 전자레인지를 발명했다는 것. 이 책이 전하는 전자레인지와 전구 필라멘트의 개발 혹은 개선 과정은 한결 방대하다.

저자는 기술이나 공학적 성과를 필연적인 것으로 보거나 과대평가하는 것, 그래서 대중의 통제가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시각의 문제를 지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무엇보다 책에 실린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례들이 공학도가 아닌 독자들도 공학적 방법과 공학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원제 The Things We Make: The Unknown History of Invention from Cathedrals to Soda C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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