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완화' 이란 페제시키안, 결선투표서 이변의 대통령 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가 진행 중인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여성 유권자들이 투표를 마친 뒤 기표 잉크가 묻은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가 진행 중인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여성 유권자들이 투표를 마친 뒤 기표 잉크가 묻은 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에브라힘 라이시 전 이란 대통령의 후임을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가 5일(현지시간) 시작됐다. 1차 투표에서 깜짝 1위를 한 개혁 성향의 마수드 페제시키안(70) 이란 의회 의원과 보수 성향의 사이드 잘릴리(59) 전 외교차관의 대결이다. 페제시키안 의원은 젊은층과 여성, 잘릴리 전 차관은 보수층 표심에 호소하고 있는데 둘 중 누가 더 지지층 결집에 성공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이란 국영TV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결선투표는 이날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1시 30분)부터 전국 각지에 마련된 6만여 개 투표소에서 시작됐다. 투표는 오후 6시까지 10시간 동안 진행된다. 총 유권자 수는 약 6100만 명이다.

지난 4일 이란 테헤란의 한 거리에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 나서는 마수드 페제시키안(왼쪽) 후보와 사이드 잘릴리 후보의 사진이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일 이란 테헤란의 한 거리에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 나서는 마수드 페제시키안(왼쪽) 후보와 사이드 잘릴리 후보의 사진이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결선 투표에 나선 후보는 1차 투표에 최종적으로 나온 4명 중 득표율 1·2위를 기록한 페제시키안 의원(44.4%)과 잘릴리(40.4%) 전 차관이다. 이번 대선에 나선 인물 중 유일한 개혁 성향 후보인 페제시키안 의원은 심장외과 의사 출신이다. 2001∼2005년 온건 성향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아래에서 보건장관을 지냈다.

이번 대선에선 2015년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파기한 후 심화한 경제제재를 풀어내기 위해 서방과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 천명했다. 법을 개정해 도덕 경찰을 통해 여성의 히잡 복장을 단속하는 정책을 완화하겠다고도 공약했다. 이를 바탕으로 젊은 층과 여성의 지지를 받고 있다.

대선 결선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4일 이란 테헤란에서 한 이란 시민이 결선에 나선 사이드 잘릴리 전 외교차관과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사진이 붙은 오토바이 옆에서 미소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대선 결선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4일 이란 테헤란에서 한 이란 시민이 결선에 나선 사이드 잘릴리 전 외교차관과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사진이 붙은 오토바이 옆에서 미소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에 반해 강경 보수파인 잘릴리 전 차관은 2005년 반서방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부에서 유럽·미국 담당 외교차관으로 발탁됐고, 2007년과 2013년 이란 핵 협상 대표로 서방과 대치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란 권력서열 1위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잘릴리 전 차관은 자신이 보수 성향인 라이시 전 대통령의 과업을 이어갈 후계자라는 점을 내세웠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도 라이시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사진을 포스터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핵개발 가속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는 등 강경 공약을 내걸면서도 젊은 층을 겨냥해 인터넷 속도를 50배로 끌어올리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대선 결선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4일 이란 테헤란에서 한 이란 여성 시민이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의 선거 포스터가 걸린 나무 옆을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선 결선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4일 이란 테헤란에서 한 이란 여성 시민이 마수드 페제시키안 후보의 선거 포스터가 걸린 나무 옆을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외신과 전문가들은 결선 투표 결과는 양 후보의 지지층 결집 여부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페제시키안 의원의 경우 39.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1차 투표의 투표율이 결선 투표에서 높아질수록 당선 가능성이 커진다. 투표율 증가는 1차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중도와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보다 많이 투표에 참여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페제시키안 의원도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내세우는 ‘구색 맞추기’용 후보에 불과하다며 정치권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이 결선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잘릴리 전 차관의 경우 흩어진 보수표를 모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산술적으론 1차 투표서 3위(14.4%)를 차지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의 지지층만 흡수하면 결선투표서 페제시키안 의원에게 손쉽게 역전할 수 있다. 1차 투표 직후 갈리바프 의장이 잘릴리 전 차관에 대한 지지 선언도 했다.

그러나 갈리바프 지지층 내에선 분열 조짐도 엿보인다. 뉴욕타임스는 “현지 여론조사 등에선 온건 보수 후보인 갈리바프를 지지하는 유권자 상당수가 강경 보수인 잘릴리의 당선을 막기 위해 페제시키안에 투표하겠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