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빵집, 밤엔 배달"…N잡 뛰는 '나홀로 사장' 역대 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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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의 한 식당 모습. 뉴시스

서울의 한 식당 모습. 뉴시스

서울 도봉구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40대 자영업자 이모씨는 영업을 마치는 밤 10시부터 야간 배달 알바를 뛴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인건비에 알바생 없이 혼자 가게를 꾸려가는데, 최근 임대료와 재료비까지 덩달아 오르면서 본업만으로 먹고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몸이 고되지만 당장 대출을 갚고 생계를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투잡을 뛰어야 한다”고 밝혔다.

내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생계유지를 위해 부업까지 뛰어드는 이른바 ‘N잡러 사장님’이 역대 최대로 늘어났다. 정부는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 대책을 발표했지만, 출구 전략 확대 등 보다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4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부업을 한 적이 있는 ‘나홀로 자영업자’(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18만7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1% 늘어났다. 현재 방식으로 통계가 작성된 2014년 이후 5월 기준 역대 최고치다. 전체 자영업자가 같은 기간 2.6% 감소한 것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부업 뛰는 나홀로 자영업자는 2019년(이하 5월 기준) 14만1000명에서 2020년 13만9000명으로 줄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된 2021년 15만2000명으로 뛰면서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후 2022년 17만9000명, 2023년 18만4000명으로 매년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본적으로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내수 부진 장기화 영향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 대비 2.3%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이후 15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소비가 줄면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당시 저금리로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이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면서 연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권 사업자 대출 연체액은 10조8000억원으로, 2009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대출 연체율은 2022년 2분기 0.5%에서 올 1분기 1.52%로 3배 수준으로 커졌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 대출 연체율이 0.56%에서 0.98%로 높아진 것과 비교하면 큰 상승폭이다.

고물가에 따른 식재료비·임대료 부담도 여전히 자영업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를 유지하면서 둔화세를 이어갔지만, 농산물은 전년 동월 대비 13.3% 상승하는 등 체감 물가는 아직 높은 상황이다. 지난 10년새 76.7%나 치솟은 최저임금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종업원 대신 키오스크나 서빙 로봇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결국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부업에 뛰어들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줄어드는 실질 소득에 압박을 받는 와중에 배달 알바 같은 플랫폼 일자리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며 "자영업자들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자연스럽게 부업에 몰리는 구조가 만들어졌다”이라고 말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실제 통계상으로도 자영업자들은 사업소득만으로 가계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있었다.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올 1분기 나홀로 자영업자 가구의 월평균 사업소득은 274만407원으로, 월평균 가계지출(335만5490원)에 크게 못 미쳤다. 대신 가구주 부업이나 다른 가구원이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78만6675원)과 정부 지원금 등 이전소득(71만7343원)으로 모자란 살림살이를 메웠다.

특히 소득 수준에 따른 격차도 컸다. 소득 5분위(상위 20%)의 경우 사업소득(683만5313원)이 가계지출(584만3352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소득 1분위(하위 20%)는 사업소득(39만6416원)이 가계지출(189만4417원)의 1/5 수준에 불과했다. 장사도 잘되는 곳만 잘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임금근로자에선 일시휴직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에선 부업 비중이 늘어난다”며 “자영업은 폐업하는 것도 비용이기 때문에 비자발적 부업으로 당장 생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상가 밀집 지역. 뉴스1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상가 밀집 지역. 뉴스1

자영업 위기가 고조되면서 정부는 지난 3일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대출 상환 기간을 연장하고, 임대료·전기료 등 각종 고정비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이다. 폐업 비용을 지원하고, 폐업 후 직업훈련을 받으면 수당을 지급하는 등의 재기 지원책도 포함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계 상황에 부닥친 자영업자들을 위한 보다 혁신적인 출구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번 대책은 자금 지원에 방점이 찍혀있는데, 결국 ‘시간 벌어주기’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폐업 비용 지원 등도 중요한 내용이지만, 이들이 자영업을 그만두고 정말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이 시급하다”며 “특히 늘어나는 60대 은퇴자들이 무작정 창업에 뛰어드는 대신 다른 일자리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계속고용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노 연구위원도 “구조 개선을 통해 자영업자들이 더욱 과감하게 폐업을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고, 나아가 재취업·재창업 등 ‘두 번째 기회’가 가능하도록 컨설팅, 일자리 매칭 등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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