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해도 누가 축하하겠나"…뜨거운 윤이나, 차가운 동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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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인생을 골프에 비유합니다. 골프엔 수많은 이야기가 응축돼 있기 때문입니다. 골프에는 완벽함이 없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인 심리학자 스콧 펙은 “골프는 육체적·정신적·영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는 연습”이라고 했습니다. 골프 인사이드는 이처럼 불완전한 게임을 하는 완벽하지 못한 골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체 연재 콘텐트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인 The JoongAng Plus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구 플레이로 인한 징계가 감면돼 지난 4월 KLPGA 투어에 복귀한 윤이나. 헛스윙 사건으로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 KLPGA]

오구 플레이로 인한 징계가 감면돼 지난 4월 KLPGA 투어에 복귀한 윤이나. 헛스윙 사건으로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사진 KLPGA]

6m 버디 퍼트는 홀 바로 옆에 멈췄다. 관중의 탄식이 나왔다. 윤이나는 홀쪽으로 걸어가 퍼터를 휘둘렀다. 퍼터에 볼이 닿지 않았다. 윤이나는 다시 볼을 쳐 홀에 넣었다.

지난 4월 20일 경남 김해의 가야 골프장. KLPGA 투어 넥센 세트나인 마스터즈 2라운드 2번 홀에서 일어난 일이다. 파 퍼트 거리는 10㎝ 정도에 불과했다. 갤러리들은 모두 윤이나가 아쉽게 버디를 놓쳐 파를 했다고 생각했다. 윤이나도 그랬다.

그러나 경기위원회는 파가 아니라 보기라고 했다. 볼을 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스윙했기 때문에 2번 홀 그린에서의 헛스윙도 타수로 계산해야 한다는 거였다. 윤이나는 “바람에 균형을 잃어 스윙처럼 보였을 뿐이지 볼을 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KLPGA 조정이 치프 레프리는 “당시 윤이나의 헛스윙을 보고 여러 곳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몇몇 선수와 선수분과위원에서도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윤이나가 경기하는 동안 동영상을 검토해 스윙할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고, 윤이나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윤이나는 결국 이를 인정했다. 윤이나의 2번 홀 스코어는 파가 아니라 보기가 됐다.

윤이나

윤이나

윤이나의 상승세가 뜨겁다. 윤이나는 5월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했고 두산 매치플레이에서 4강에 올랐다. 두산 매치 준결승 이예원과의 경기 순서 논란 이후 주춤하는 듯하더니 최근 벌어진 2경기(한국여자오픈,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에서 다시 우승 경쟁을 했다.

이 추세로 보면 곧 우승이 나올 것 같다. 게다가 윤이나는 여름에 강했다. 신인이던 2022년에도 여름에 열린 BC카드-한경 3위, 맥콜-모나피크 2위, 에버콜라겐 우승을 기록했다. 날은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동료들의 분위기는 냉랭하다. 골프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선수들이나 관계자들이 윤이나를 보는 시선은 매우 싸늘하다”고 했다. 또 다른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프로암 등에서 선수들이 윤이나와 말을 섞지 않아 분위기가 썰렁하다. 실제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윤이나가 우승했을 경우 아무도 축하해 주러 나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규칙을 지키지 않아 징계를 받고, 징계를 감면 받아 조기 복귀한 윤이나에게 룰 관련 사건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했다. 윤이나는 4월 넥센-세인트나인과 5월 두산 매치 플레이에서도 룰 관련 문제를 일으켰다. 3개월 사이에 2건이다.

2022년 한국여자오픈 스코어카드 오기까지 포함하면 윤이나는 프로에서 활동한 7개월 동안 3건의 룰 문제를 일으켰다. 선수 출신 협회 간부는 “룰 문제가 있었으면 징계받는 동안 규칙 공부를 제대로 하고 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지난 2022년 9월 KLPGA 상벌위원회에 참석한 직후 취재진 앞에 선 윤이나. [뉴시스]

지난 2022년 9월 KLPGA 상벌위원회에 참석한 직후 취재진 앞에 선 윤이나. [뉴시스]

윤이나의 헛스윙 사건은 스코어와 직결된 문제다. 윤이나는 처음엔 헛스윙 스트로크를 타수에 포함시키지 않으려 했다. 스트로크 중이라도 칠 의사를 철회하면 스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규정을 이용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이나의 스윙은 중간에 생각을 바꾸기엔 너무나 짧은 스윙이어서 인정받지 못했다.

외롭게 싸우는 윤이나의 모습은 안쓰럽다. 한 번 유혹을 이기지 못한 어리고 유망한 선수에게 부과된 골프 규칙이 너무 과하다는 주장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런 윤이나를 돕고 싶어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도 충분히 알 것 같다.

그러나 윤이나의 스코어카드 고의 오기 사건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골프의 본질인 정직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헛스윙 사건 같은 것들이 일어난다면 윤이나가 아무리 많이 우승하더라도 해결되지 않는다.

요즘 경기를 보면 윤이나는 세계랭킹 1위에 오를 자질이 있는 것 같다. 윤이나를 응원하고 싶다. 그러나 진정 골퍼로 성공하려면 실력에 앞서 동료들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 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동료 선수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이에 앞서 골프의 정신과 이를 구현하는 규칙을 존중해야 한다.

윤이나가 징계 감면을 받은 후 기자가 쓴 칼럼에 썼던 문장을 다시 한 번 쓴다.

‘골프에서는 스코어를 속이는 등의 치팅(cheating)을 주홍글씨와 연결한다.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에서 혼외 자식을 낳은 헤스터 프린이 평생 달고 다닌 그 주홍글씨다. 헤스터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도와 존경을 받았다. 헤스터가 달고 있던 주홍글씨의 A는 Adultery(간음)의 약자인데 사람들은 그 A를 능력 있는(Able)으로, 나아가서는 천사(Angel)로 인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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