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호 “다큐도 웃겨야 보는 시대, AI가 도움 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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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의 한 장면. 인도 위인들이 공연장에 앉아 있다. [사진 EBS]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의 한 장면. 인도 위인들이 공연장에 앉아 있다. [사진 EBS]

“다큐멘터리가 이렇게 웃겨도 되나요?” 지난 1일 끝난 EBS 다큐프라임 창사특집 3부작 ‘위대한 인도’를 본 시청자 반응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도 문명사를 촘촘하게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시청 소감치고는 좀 별나다.

‘위대한 인도’는 자료 화면을 놓고 해설자와 성우가 번갈아 설명하는 다큐의 보편적 문법을 따라가지 않는다. 걸그룹 에스파의 ‘슈퍼노바’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해 사람이 건물 꼭대기에서 날아가는가 하면, 진행자인 서울대 강성용(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 교수와 KAIST 김대식(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타지마할 앞에서 춤추고 노래한다. 간디, 찬드라 굽타 등 역사 속 인물이 공연장에 앉아 교수들 설명을 한마디씩 거들기도 한다.

이 장면들은 생성형 AI(인공지능) 기술로 만들었다. 지난 2일 서울 잠실에서 만난 연출자 한상호(54·사진) PD는 “생성형 AI를 사용한 첫 다큐라서 주목받았지만, 앞으론 AI를 사용하지 않은 다큐가 주목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1995년 EBS에 입사한 한 PD는 기술과 스토리의 결합에서 선구적 역할을 해 왔다. 2002년 시각 기술을 사용한 다큐 ‘문자’로 삼성언론상을, 2004년 초고속 촬영 기술로 다큐 ‘마이크로의 세계’를 연출해 한국방송프로듀서상과 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2008년엔 정교한 풀CG(컴퓨터 그래픽)로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한 EBS 다큐 ‘한반도의 공룡’을 연출했고, 영화 ‘점박이 3D’(2012), ‘점박이2’(2018)도 선보였다.

한 PD는 “IT(정보기술)로 유명한 인도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AI를 꺼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직접 사용해 보니 여러 면에서 파괴적인 기술이다. 촬영 후 CG를 따로 입힐 필요가 없으니 제작비도 절감되고 제작 기간도 줄어들었다”고 긍정적 효과를 전했다. 다큐는 인도 최대 공영방송사인 프라사르 바라티에서도 방영되고, 동명의 책도 발간했다.

다큐는 강 교수와 김 교수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다. 한 PD는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에서 영감을 받아 이런 형식을 차용했다. 설명이 길어지거나 보충자료가 필요할 땐 생성형 AI로 만든 인도 위인들이 나와 재미를 더한다. 인도 촬영 장면은 여행 브이로그 느낌으로 예능적 매력을 살렸다. 한 PD는 “AI의 발달로 PD라는 직업이 위협받고 있음을 실감한다”며 “항상 미래 기술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내용적 측면에선 다큐도 웃겨야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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