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이 숨겼던 ‘性’이란 시, 아내는 치욕 참고 발표했다 [백년의 사랑]

  • 카드 발행 일시2024.07.05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가 들려주는 ‘백년의 사랑’(5·최종)

‘백년의 사랑’ 요약

김수영 시인이 첫사랑에게 버림받고 방황하던 1942년 일본 유학 시절. 절친인 이종구가 ‘사랑하는 조카딸’이라며 예뻐하던 여섯 살 아래 김현경을 김수영에게 소개한다. 김현경은 이종구와 김수영을 모두 ‘아저씨’라 부르며 문학을 논한다.

김현경은 첫사랑 배인철 시인을 총격으로 잃고 구설에 오른다. 김수영 시인은 고립된 김현경을 가장 먼저 찾아와 “문학하자”고 말한다. 문학이 사랑이자 구원이었던 둘은 관습을 뛰어넘어 동거하고, 결혼한다. 임신한 김현경을 두고 의용군으로 끌려간 김수영은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포로로 붙잡혀 2년3개월간 구금된다.

김수영은 일자리를 찾아 피란 수도 부산에 내려가고, 김현경도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뒤따라간다. 일자리를 청탁하러 이종구를 찾아갔다가 그 집에 머물며 살림을 도맡게 되는데. 내심 김현경을 짝사랑했던 이종구는 김현경의 친정에 매달 생활비를 부쳐주며 그녀를 붙들어둔다. 김수영 시인이 6개월 뒤에야 찾아오지만, 김현경은 “먼저 가세요”라며 돌려보낸다.

서울로 환도한 뒤에도 한동안 이종구와 살던 김현경은 어느 날 몰래 집을 나와 방을 얻는다. 신춘문예 준비에 매진하던 김현경은 1955년 봄, 김수영에게 만나자는 엽서를 쓴다. 말끔한 차림으로 약속 장소에 나온 김수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날부로 김현경과 부부의 연을 다시 이어간다.

소음에 예민한 김수영 시인을 위해 마포구 서강의 넓은 땅 한가운데에 있는 독채로 이사한다.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가며 김수영 시인은 서서히 전쟁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시인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러나 술에 취해 귀가하던 길, 버스 사고로 아까운 생을 마감한다. 죽기 20일 전에 쓴 ‘풀’은 그의 유작이자 대표작이 됐다.

더, 스토리 - 백년의 사랑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수영(1921~68) 시인이 시에서 ‘여편네’라 멸칭하고 때론 ‘아내·처’라 썼던 뮤즈, 1927년생 김현경 여사는 논란의 인물이었다. 김수영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 그의 절친인 이종구(1921~2004)와 살았던 전력 때문이다. 김수영은 한국전쟁 때 북한 의용군(김수영은 ‘민간인 억류자’라고 표현했다)으로 끌려갔다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남한에선 공산 포로로 붙잡혀 2년 넘게 수감된다. 시인은 전쟁의 트라우마에 아내를 잃은 슬픔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김수영의 선택은 결국 김현경이었다. 돌아온 김현경과 재결합한 뒤 왕성하게 시와 산문, 평론을 쓰고 번역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다 교통사고로 비명에 떠났다. 이후 김현경은 김수영의 손때가 묻은 자료를 이고 지고 다니며 보존했고, 그의 흔적이 세상에 알려지도록 김수영문학관에 기증했다.

이제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김현경 여사에게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찾아가 인터뷰한 게 지난 5월 중순이었다. ‘더, 스토리-백년의 사랑’ 첫 회가 나온 뒤 출판사 ‘어나더북스’ 권무혁 대표의 연락을 받았다. 홍기원(64)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이 김현경 여사를 1년 넘게 인터뷰해 정리한 이야기가 곧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시인 김수영과 아방가르드 여인』의 저자 홍기원 이사장을 지난달 20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나 그 뒷이야기를 들었다.

홍기원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 인터뷰

홍기원 이사장. 김종호 기자

홍기원 이사장. 김종호 기자

🆀 이경희 : 2021년 출간한  『길 위의 김수영』 책을 김현경 여사께 드리러 갔다가 인터뷰를 결심했다고요.

🅰 홍기원 : 네. 제가 김수영 본가 유족을 10년 넘게 만났습니다. 본가 쪽 이야기를 들어서 김수영 시인 탄생 100주년 사업 때 『길 위의 김수영』을 냈습니다. 아무래도 당사자시고 아직도 생존하고 계시는 사모님한테 이 책을 전달해야 되겠다 싶어 찾아뵈었죠. 김현경 여사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많았는데, 서운하다는 말씀은 일절 없이 밥을 차려주시고 수고했다 하시더라고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모던 걸’,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인데 간단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됐죠. 고은 시인은 “김수영에게 김현경은 고통이자 매력”이라고 하더라고요. 김수영 시인이 좋아했던 매력이 뭘까, 진심으로 그것을 추적하고 싶다. 김수영이 정말 사랑했던 유일한 여성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주는 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는 데에 차이가 클 거다. 그래서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그 일을 한 거죠.

🆀 그런데 인터뷰가 오래 걸렸다고요. 

🅰 첫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직후 허리를 쓸 수가 없어서 입원하셨어요. 다행히 퇴원하셨다고 해서 인터뷰 약속을 잡고 가는 도중에 다시 병원에 가신다는 거예요. 두 번째 입원한 게 지난해 7월인데 상태가 훨씬 안 좋더라고요. 책을 내지 말라는 신호인가, 그렇게 느꼈죠.

여사님이 저한테 “요양병원은 그야말로 노인들 시체 보관소다. 여기서 정말 죽기 싫다. 내가 집에 돌아가서 책을 읽다가 자는 듯이 가고 싶다, 여기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된다, 정신을 차려야 된다”고 주문처럼 말씀하셨어요. 주변에서는 다들 못 나온다고 그랬는데, 기적처럼 다시 나오신 거예요.

둘째 아들 우 아래로 딸이 둘이거든요. 그중 둘째 손녀하고 약속하길 자기 손으로 밥을 먹고 살림을 하는 보통 할머니가 되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하늘이 도와서 이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어요. 인간이 하는 일이지만 이런 책 하나 내는 것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못하는 거죠.

🆀 제가 처음 인터뷰를 갔을 때도 바지를 갈아입다가 넘어지시는 바람에 갈빗대 3개랑 척추뼈가 나간 지 한 달쯤 지난 상태였어요. 지팡이 없이 두 발로 걸으시는데, 그래도 힘드실까 봐 길게 못 하고 나왔거든요. 누군가는 이분의 증언을 채록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던 차에 책이 나온다길래 다행이다 싶었어요.

🅰 우리 문화예술계에 유명한 여성들이 있잖아요. 가령 김환기(1913~1974) 화백의 아내 김향안(1916~2004) 여사는 이상(1910~1937)의 부인이었잖아요. 그런 여성의 역사는 충분히 인터뷰해서 기록을 남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수영이 정말 사랑했던 여성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책이 있고 없고는 김수영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차이가 크죠. 그래서 제가 김수영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인터뷰를 했던 거고요.

🆀 『길 위의 김수영』 을 쓸 때만 해도 김현경 여사를 인터뷰하겠다는 생각은 안 하셨던가요?

🅰 그런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죠. 지금도 그렇지만 시댁과 며느리가 많이 갈라져 있어서 제가 접근하기가 조금 힘들었어요. 김수영 본가 분들 눈치도 보이고요. 그땐 어떻게든 (본가의 협조를 받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야 된다는 일념으로 사비를 털어 만들어냈던 책입니다.

🆀 사실 문단에서 김현경 여사를 안 좋게 보는 분위기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분에겐 발언 기회가 없었겠다는 느낌도 있어요.

🅰 김수영이 가장 필요할 때 이종구와 살았으니 그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만만치 않죠.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힌 부분도 많고요. 그렇지만 김수영 시인이 1955년 4월에 김현경 여사와 왜 다시 손을 잡았을까. 고은 시인 말대로 “고통이자 매력”인데, 딴 남자에게 살러 간 여자와 다시 손을 잡은 내적 동기와 힘을 솔직하게 추적해 보자. 그래서 이번에 7개의 사랑의 장면으로 요약되는 스토리가 나온 거죠.

🆀 어떠세요? 김현경 여사님 인터뷰해 보시니까 다시 손잡을 만하구나 그런 생각이 드세요?

🅰 20대의 그 김현경을 저도 한 번 만나보고 싶더라고요.

🆀 저도 사실은 약간 자극받았어요. 김현경 여사가 두 번째 인터뷰에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시는 거예요. 그 사진을 저한테 카톡으로 보내주셨는데 98세 할머니가 더 고와서, 충격받아서 미용실에 갔죠.

🅰 우리 나이로 98세인데도 정신을 차려야 된다면서 뭐 하나라도 항상 신경쓰는 모습, 생에 대한 의지, 끝까지 미(美)를 사랑하는 마음이 보이는 거예요. 그게 어찌 보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 아닐까요? 김수영 시인이 ‘거대한 뿌리’에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고 노래한 부분처럼 영원한 사랑을 총괄하는 모습을 좋아한 거 아닌가. 정말 20여 차례 인터뷰하는 내내 20대의 김현경은 어땠을까, 정말 다시 손 잡고 싶은 연인이었을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는 20대였던 김현경의 선택이 한편으로 이해도 되더라고요. 이종구가 친정에 생활비를 대주고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남편이 한 6개월 만에 찾아와서 “가자” 그러는데, 도움만 받고 입 싹 닦고 일어나기도 그렇고, 같이 가면 어떻게 먹고 살지, 이런 복잡한 그 순간의 망설임이 있을 수도 있겠다….

🅰 6·25 피란 시절, 그 궁핍한 시절에 일어났던 일들이기 때문에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잖아요. 김수영 시인은 문학가 중에서 6·25를 가장 격심하게 겪었던 사람이에요. 북에 총알받이로 끌려가고, 혼란기를 타 탈출해 200㎞를 서울까지 걸어서 내려왔고요. 그런데 북에서 내려온 빨갱이라고 서울 중부서에서 2주 만에 완전히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로, 이빨이 다 나갈 정도로 고문을 받았잖아요. 포로수용소에서는 인민재판을 받다가 죽기 직전에 탈출하고요, 매일 아침 포로들의 토막 시체가 나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