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100억씩 주지" 원고없던 발언…韓총리가 쿡 찔러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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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한덕수 국무총리.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한덕수 국무총리.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국민 1인당 왜 25만원만 줍니까. 한 10억원씩, 100억원씩 줘도 되는 것 아니에요.”

3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를 주재한 윤석열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한 것 아니겠냐”며 “물가가 상상을 초월하게 오를 뿐 아니라 대외 신인도가 완전히 추락한다”고 말했다. 국채 발행을 통해 재정 적자를 충당하자는 주장에는 “정말 개념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전국민 민생지원금 지급을 주장하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참모들이 준비한 원고에는 없던 표현이었다. 한 대통령실 참모는 4일 통화에서 “윤 대통령이 작심 발언을 한 것”이라고 평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역동경제로 서민·중산층 시대 구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행사에서 F1 경기 도중 피트스탑 장면을 찍은 사진을 들고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역동경제로 서민·중산층 시대 구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행사에서 F1 경기 도중 피트스탑 장면을 찍은 사진을 들고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를 비판한 배경과 관련해 회의 참석자 중 일부는 그 직전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을 거론한다. 한 총리는 앞서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물려받은 경제를 봤을 때 '우리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문재인 정부를 맹공했다. 그러면서 “전 정부가 국가 부채비율을 대폭 늘렸는데, 그대로 가면 우리 정부가 끝나는 2027년엔 부채비율이 70%에 달해 파산 수준에 이르렀다”며 “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상황을 정상화했다. 얼마나 욕을 많이 먹으셨냐”고 말했다. 당시 회의에 배석했던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 총리의 발언에 윤 대통령이 공감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총리의 작심 발언이 윤 대통령의 작심 발언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 총리는 최근 전임 정부를 겨냥한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2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선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국제사회가 제재로 북한을 대화로 나오게 하려고 노력할 때 제재 완화를 주장해 국제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같은 날 오전 윤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도 “대정부질문에 나가면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을 명확히 설명하라”며 장관들의 군기를 잡았다고 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요즘 윤 대통령의 속을 가장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사람이 한 총리”라고 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일 국회 본회의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한덕수 국무총리가 2일 국회 본회의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정부에선 한 총리가 윤 대통령을 대신해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지지율 상승이 시급한 윤 대통령이 정쟁과 거리를 두고 민생에 집중하는 전략을 택했다면, 한 총리가 야당과의 각개 전투를 맡는 현장 지휘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총리의 유임이 기정사실로 되며, 각 부처 정책 사안에 대한 한 총리의 장악력이 더 강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한 총리는 사실과 다른 주장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을 가장 나쁜 정치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경제 분야와 관련해선 평소의 소신을 밝힌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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