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거 없는 2년…경제 살릴 구조개혁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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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금·재정 개혁 방안 등 실기하지 말기를

기획재정부가 매년 두 차례 발표하는 ‘경제정책 방향’(이하 경방)은 정부의 경제 진단과 구체적 해법이 담긴다. 정부가 정책 의지를 가다듬고 정교하게 벼리는 계기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어제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방 자료는 14쪽에 불과하다. 그 대신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강조했던 역동경제 로드맵(69쪽)을 같이 내놨다. 단기 대응은 경방에, 구조적 문제 해결의 중장기 과제는 로드맵에 담았다는 설명이다.

로드맵에서 생산 요소인 자본·토지·노동의 활용도를 높이는 정책이 눈에 띈다. 자본은 모험자본 활성화와 밸류업으로, 토지는 산지·농지의 활용도를 높이는 국토 재창조 프로젝트 등의 이용 규제 완화로, 노동은 첨단 인재 양성과 외국 인력 확충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내용이다. 밸류업에는 주주 환원에 대한 법인세 공제, 배당 증가 금액 저율과세, 최대주주 지분 상속세 할증 폐지 등이 포함됐다. 생산 요소의 활용도를 높이면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세금 정책의 대부분은 거대 야당이 장악한 국회의 문턱을 설득으로 넘어야 한다.

더구나 임금체계 합리화, 경직적인 근로시간 제도 개선 등의 노동개혁과 사립대학 구조개선법 제정, 직업고 강화 등의 교육개혁은 로드맵을 거론했지만 당장 시급한 연금개혁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재정개혁은 빠져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무거워질 미래 청년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연금 보험료는 하루빨리 올려야 하고, 새로운 세원 발굴과 세율의 합리적 조정 등 중장기적 재정 확충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

야당이 장악한 국회라며 중요한 개혁을 뒤로 미루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전기·가스요금 현실화 역시 시급하다. 선거 없는 향후 2년, 이런 개혁 조치를 얼마나 마무리하느냐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


25조원 소상공인 대책…지원 넘어 경쟁력 강화 모색을

정부가 하반기 최우선 과제로 자영업·소상공인 위기 극복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어제 2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전기료와 이자 등 경영 부담 완화와 정책자금 지원 대상 확대 및 대출 만기 연장 등의 금융 지원도 담았다. 폐업 소상공인의 취업 지원 방안도 마련하는 등 포퓰리즘적인 현금 살포가 아닌 소상공인 맞춤형 구조적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한국 경제의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자영업자 수는 약 570만 명 수준으로, 전체 취업자 중 23.5%(2022년 기준)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성긴 사회안전망에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탓에 너나 할 것 없이 자영업으로 뛰어든 탓이다. 그렇다 보니 생계형이나 영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22년 기준 연매출 5000만원 미만의 소상공인과 20·30대 비중이 2019년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빚으로 버티던 이들이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둔화, 소비 부진의 직격탄을 맞으며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에는 이미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연체액은 올해 1분기 10조8000억원에 이른다. 2022년 4분기 5.3%였던 자영업자 취약차주 대출 연체율은 올해 1분기 10.2%까지 치솟았다.

빚에 허덕이고 각종 부담에 시달리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단기적 지원은 물론 필요하다. 이들의 구제를 위해 먼저 이뤄져야 하는 조치다. 그럼에도 이번 대책에는 ‘종합대책’이란 말이 무색하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장기 구조조정과 개혁, 자영업 고도화를 위한 고용 및 산업 전략은 찾을 수 없었다. 지속가능한 구조 개혁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이번 대책도 그저 돈만 쏟아붓고 효과는 미미한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차등 적용 무산, 최저임금 인상 폭 최소화로 충격 줄이길

내년 최저임금 업종 차등 적용이 무산됐다. 지난 2일 최저임금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결되면서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경영계는 음식점과 택시운송업, 편의점 등 3개 취약 업종에 대해 다른 업종에 적용하는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게 해달라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년에도 모든 업종에 동일한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 7년간 최저임금은 명목상 52.4% 올랐다. 주휴수당까지 감안하면 상승 폭은 82.9%까지 뛴다. 문제는 이렇게 오른 임금을 감당할 수 있느냐다. 업종마다 고용 여건과 고용주의 지불 능력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 최저임금을 주라는 것은 기형적이다. 그 결과 ‘나 홀로 사장’과 ‘쪼개기 알바’가 늘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곳도 상당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시간당 9620원)을 받지 못한 근로자는 301만 명으로 전년보다 25만 명 늘었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13.7%나 된다. 법정 유급 주휴시간을 반영하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533만 명(24.3%)이다. 숙박·음식점업(55%)과 5인 미만 사업체(49.4%) 근로자는 절반에 이른다. 현재의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많다는 의미다.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최저임금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제도를 강요하는 건 범법자만을 양산할 뿐이다. 복잡해지는 경제 구조 속에서 업종별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도 차등 적용을 위한 업종 임금 실태조사 등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차등 적용은 무산됐지만, 최저임금 상승 폭을 최소화해 시장의 충격을 줄여야 한다. 노사 협상과 공익위원의 중재에 따른 최저임금 결정 구조도 다시 손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