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의리? 실리!…북한 외교,‘영원’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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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논설위원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의 동선(動線)은 북한을 읽는 창(窓)이다. 최고지도자가 사안을 직접 챙기고, 그의 관심 안에서 모든 정책이 이뤄지는 권위적인 1인 지배체제 탓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가장 급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려는 대상을 찾아 나서고, 현지지도를 한 곳에 집중적인 자원을 지원하며 성과를 내도록 해 본보기로 삼는다.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의 집계 결과 올해 상반기 김 위원장은 58회의 공개활동을 했다. 최근 5년 동안 가장 많은 수치다. 그는 2012년 집권 이후 5년 동안 상반기에만 68회(2016년)~99회(2013년) 북한 매체에 등장했다. 집권 직후엔 현장을 찾아 지도자 수업을 하고 현실 파악, 주민들에게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그의 공개활동은 2020년 18회(상반기)까지 줄었다. 그런데 올해 다시 잰걸음에 나선 건 뭔가 챙겨야 할 것이 다시 늘었거나 외부에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차원으로 읽힌다.

눈에 띄는 건 공개활동 중 군사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확 늘었다는 점이다. 그는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과의 관계를 장기전으로 규정하고, 연거푸 미사일을 쏘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2020년엔 공개활동 중 44.4%(18회 중 8회)를 군사분야에 할애했다. 지난해엔 33회 중 19회(57.8%)를 군사 분야 공개활동에 할애했고, 올해엔 50%(58회 중 29회)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부터 북한이 한·미 군사연합에 미사일로 맞서는 등 일종의 ‘맞짱전략’에 나선 결과다. 신형 미사일 개발 및 발사 현장을 수시로 찾아다닌 것이다.

북, 군사 이어 외교도 맞짱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달 19일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일정 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한 차량을 운전하고 있다. [뉴스1]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달 19일 평양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일정 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한 차량을 운전하고 있다. [뉴스1]

김 위원장이 러시아와 밀착하며 외교 분야에서 한·미 동맹에 맞서려는 모습도 특이하다. 지난해 한·미, 한·미·일이 정상회담을 하고 북한의 핵에 공동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어 지난달 19일엔 푸틴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해 유사시 사실상 자동 개입하는 내용을 담은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푸틴 대통령은 대북제재를 이행하기는커녕 자신이 이용하는 차종인 아우루스 승용차를 4개월 만에 또 줬다. 이번 달 유엔 안보리 의장을 맡은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 1일(현지시각)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 국가에 끝이 없는 제재를 가하는 일은 불공정하다”며 “우리는 북한에 대한 제재 체제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북제재의 균열을 넘어 붕괴를 시도하며 노골적인 북한 편들기에 나선 것이다.

반면, 중국과의 관계는 소원한 상황이 이어지며 북·중·러 협력은 제한적이다.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불량국가로 취급받는 북한과 러시아와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수 있지만, 북한 스스로의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한국과 중국의 ‘훈수’ 탓으로 돌리려는 차원이다.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11개월 동안 중국을 네 차례 걸음 했지만, 회담 결렬 후 교류가 멈춰선 게 이를 보여준다.

중국과의 관계를 혈맹 또는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치(脣齒) 관계로 여겨왔던 북한이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이 만날 때마다 북한은 조·중 관계의 새로운 장(2018.3)→형제적 우정과 단결(2018.5)→새 시대의 요구에 맞는 친선 강화(2018.6)→뜨거운 우의, 두터워지는 동지적 신뢰(2019.1)→사회주의 한 길에서 영원한 친선(2019.6) 등으로 평가했다. 북한은 중국과 ‘영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6월, 시 주석 방북 열흘 뒤 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진전이 없자 김 위원장은 한 번의 만남도 없었던 푸틴 대통령과 3차례 만나는 등 배를 갈아탔다. 북한은 북·중 관계 수립 75주년인 올해 관영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에 ‘조중 친선의 해 2024’라는 별도의 코너를 만들었지만 관련 내용은 3개가 전부다. 반면, 북·러는 정상회담을 제외하고도 올해 20차례가 넘는 전방위적인 인사 교류를 공개적으로 진행 중이다. 의리를 중시한다거나 북·중 관계를 ‘영원’으로 표현했던 단어가 무색한 수준이다.

1960년대에도 중·소 줄타기

이런 모습은 1960년대 중·소 분쟁 시기 줄타기 외교를 했던 북한을 연상시킨다. 북한은 흐루쇼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스탈린을 격하한 이후 소련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하며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에 다가섰다. 그러다 1960년대 후반 문화대혁명을 전개한 중국이 북한 지도부를 ‘기회주의’라고 몰아붙이자 북한도 중국을 ‘교조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옛 소련으로 다시 방향을 틀고 군사원조와 경제지원을 챙겼다. 핑퐁 외교를 시작으로 미·중이 관계를 개선하며 데탕트의 시대가 되자 북한은 다시 중국에 다가서며 중·소 균형 유지에 나섰다. 이런 ‘균형’도 오래가지 못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를 추구하자 북한은 이를 ‘사회주의 배신행위’라고 비난하며 소련과 소원해졌고, 1996년엔 35년간 지속해온 군사동맹을 폐기했다.

김 위원장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집권 기간 10차례 해외에 나갔다. 중국이 7번, 러시아가 3번이다. 중국에 치우친 행보를 보이면서도 그는 2006년 7월 평양에서 진행한 공관장 회의에서 당시 최진수 중국 대사를 일으켜 세운 뒤 “중국을 믿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해 1월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해 우의를 다진 직후였으니 북한 외교의 ‘속내’는 따로 있었던 셈이다.

김 위원장은 나흘간 진행한 당 전원회의를 마친 다음 날인 지난 2일 군수공장으로 달려갔다. 북한은 경제·외교적으로 러시아 전쟁의 특수를 톡톡히 노리고 있다. 중국과 미국에 손을 내밀었지만 대북제재 해제 기미는커녕 오히려 꽁꽁 막혔으니 러시아로 향하는 건 북한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선택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승용차를 선물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철저히 실리를 찾았던 북한의 전례를 보면 이 역시 영원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또다시 북한의 외교 방향을 흔들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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