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데이터

시끄러운 학교를 응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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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 했던 선현의 말씀처럼, 강연을 하는 저에게 듣는 분들은 또 다른 스승입니다. 일하는 직종과 나이는 각자의 환경으로 작용해, 몸담은 조직이 위계가 강할수록 경직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관성과 같습니다. 희망적인 것은 10년 전, 20년 전에 비해 우리 사회 조직들이 훨씬 더 자유로운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연배가 있는 이들을 만나면 처음에는 상호 간 근엄한 탐색전이 오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지난달 다녀온 곳에서 그 반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수강생들은 일선 초등학교에서 새롭게 교장직을 맡게 될 분들로, 교사 생활을 최소 20여년 간 해오신 베테랑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연배가 꽤 있음에도, 제가 지난 20년 가까이 진행한 모든 강연장에서 만난 그 어떤 분들보다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해맑게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강연일은 교장이 되기 위해 필요한 30일이 넘는 연수를 받고 수료식을 진행하는 날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신임교사로 임용되어 여러 학교를 거치며 숱한 일들을 겪어온 그들은, 이제 조직에서 다른 이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위치에 다다랐습니다. 무거운 책무를 맡으며 나름의 권위를 지키느라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 이들이 같은 처지로 영광스런 자리에서 함께 만나니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낀 것입니다. 한 달여를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동지애가 더욱 깊어져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대화의 데시벨이 무한대로 치솟았습니다. 학창시절과의 차이점은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호통치시던 선생님이 없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에게 조용히 하라고 할 선생님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에게 교장 선생님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나요? 뮤지컬 ‘마틸다’의 교장 선생님은 획일화된 교육으로 아이들을 내몰고 자유로운 창의성을 압제하는 독재자로 묘사됩니다. 이처럼 극단적인 예제는 실제와 거리가 멀지만, 지금의 교장 선생님들이 자라던 1970~80년대는 매주 월요일 ‘애국 조회’에서 ‘앞으로 나란히’로 ‘오와 열’을 맞추었습니다. 학교생활 중 우리 중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단체기합과 공동체벌의 연좌제가 횡행하던 시대였습니다. 권위주의의 시대, 훈화의 말씀은 언제나 교장 선생님이 독점해, 춥거나 덥거나 하염없이 길어지는 말씀에 발끝으로 운동장에 낙서를 하며 지루함을 참았습니다.

그 당시 너무나 많이 태어난 아이들로 인해 한 반에 70명이 넘어 ‘콩나물 교실’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습니다. 이마저도 부족해 2부제, 심지어 3부제 수업으로 어둑해진 후에 집에 왔다는 기억들을 지금도 공유합니다. 이 시절 적은 자원으로 효율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선생님들이 늘 하신 말씀이 “조용히 해”였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운동장이건 교실이건 아이들의 즐거운 대화는 제지되었고, 혹여 교장실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교실은 더욱 금지되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반장이 떠드는 아이의 이름을 적어 올리던 시절, 학교는 마치 아이들에게 ‘대화’를 허락하지 않는 상명하달의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것도 오래전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급감하는 저출생의 시대, 학교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귀해진 아이들과 높아진 인권의식이 결합하며 그 방향이 비뚤어져 교권의 침해로 흐르기도 합니다. 마음을 다친 선생님들이 명예퇴직을 많이 신청한다는 소식이 들릴 만큼 우리의 사회는 위태롭습니다.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시스템이 위기에 처한 것인가 두려워집니다.

강연을 시작하며 제가 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뵌 수강생 중에서 가장 시끄러운 분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교장 선생님이 되어 학교에 가시면 절대 학생분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이 이야기들은 들은 모든 분들은 이내 밝은 표정으로 기쁘게 화답했습니다. 아이들이 떠드는 것은 그들이 행복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며 더욱 행복을 서로 나눕니다. 나의 고정관념이 늘 엄숙함을 지켜야 한다 생각하여 이를 막는 것은, 상대의 행복함을 배려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놀이치료로 전 세계 부모들을 도운 랜드레스 박사님의 문장이 우리의 마음을 깨웁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수영하고, 아이들은 놀이를 한다.”(Birds fly, fish swim, and children play.)

그렇습니다. 새가 나는 것처럼, 물고기가 수영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노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제 당연한 것을 응원하는 당연한 사회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그 당연함을 지켜가실 이 시대의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