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방혜자, 퐁피두를 비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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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열리는 ‘빛의 화가’ 방혜자 회고전. 한국인으로는 이응노에 이어 두 번째이며 파리 올림픽 기간과 맞물려 의미 있다. [사진 퐁피두센터]

프랑스 퐁피두센터에서 열리는 ‘빛의 화가’ 방혜자 회고전. 한국인으로는 이응노에 이어 두 번째이며 파리 올림픽 기간과 맞물려 의미 있다. [사진 퐁피두센터]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방혜자의 작품은 한국과 프랑스 두 세계 사이에 떠 있는 막처럼 보입니다.” (자비에르 레이 프랑스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장)

지난달 25일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방혜자(1937~2022) 회고전이 개막했다. 유족이 퐁피두센터에 작품을 기증하며 마련된 전시다. 5층 전시장 2곳에 초기작 ‘부활의 성가’(1972)를 비롯해 가족 기증작 13점과 미술관이 따로 사들인 1점 등 작품 18점이 전시됐다. 처음 공개되는 작업노트, 다큐멘터리 영상 등 아카이브도 함께 나왔다. 닥지와 부직포 앞뒤로 채색해, 스며들고 우러나는 그의 그림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연 한국 미술가는 2017년 이응노(1904~89) 이후 그가 처음이다.

방혜자는 ‘빛의 화가’였다. 생전 그는 “빛이 내게로 왔다”고 했다. 첫 만남은 나고 자란 경기도 고양군 능리(지금의 서울 광진구 능동)에서의 어린 시절. “몸이 약해 늘 개울가에 앉아 놀았어요. 수초와 자갈, 물결이 햇빛에 찬란하게 흔들리는 걸 보며 ‘이런 것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나’ 생각했죠.”(2016년 현대화랑 전시). 후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때 수면에 반짝이던 그 찬란한 빛을 씨앗 삼아 그림을 그려나갔다.

방혜자. [사진 방혜자 가족]

방혜자. [사진 방혜자 가족]

서울대 미대 졸업 후 1961년 국비 장학생 1호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파리 국립미술학교와 국립응용미술학교 등에서 채색 유리를 비롯해 프레스코화·이콘화·판화 등 다양한 화법을 익혔다. 실험 재료는 바뀌었지만 주제는 늘 한결같이 빛이었다. 그는 “빛은 생명이고, 생명은 사랑이고, 사랑은 평화”라고 했다.

재료는 자연에서 온 것들. 닥나무 줄기로 만든 종이, 흙과 광물성 천연안료와 식물성 염료, 식물성 정유로 만든 접착제를 썼다. 닥지를 구겨 천연염료로 색칠한 뒤, 뒤에 또 색을 칠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빛의 파동과 율동을 표현했다. 유럽의 천체 물리학자들과도 교류했다. 스위스의 한 천체연구소는 “과학자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연구한 것과 흡사한 모양의 빛의 입자를 그렸냐”고 했다.

빛을 시각화한 그의 그림은 종교와도 맞닿아 있다. 파리 길상사, 서울 개화사, 광주 무각사 대웅전 후불탱이 그의 작품이다. 프랑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로 등록한 샤르트르 대성당의  2018년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도 선정됐다. 대성당이 종교참사회의실의 보수를 마치며 높이 4m 스테인드글라스 창 4개를 장식할 작품을 공모했는데, ‘빛은 생명이요, 기쁨이며 평화’라는 그의 제안이 채택됐다. 당시 선정 소식에 친분 있는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감탄을 자아내는 경이로움! 모든 창과 문을 혜자의 빛으로…. 브라보 혜자!”라고 축사를 보내기도 했다. 방혜자는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완공한 이듬해인 2022년 파리의 병원에서 85세로 눈을 감았다. 전시는 내년 3월 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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