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 여는 '빛의 화가' 방혜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리는 방혜자 회고전 전시 장면. 사진 방혜자 가족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열리는 방혜자 회고전 전시 장면. 사진 방혜자 가족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방혜자의 작품은 한국과 프랑스 두 세계 사이에 떠 있는 막처럼 보입니다.” (자비에르 레이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장)

지난달 25일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방혜자(1937~2022) 회고전이 개막했다. 방혜자 유족이 퐁피두센터에 작품을 기증하면서 마련된 전시다. 근대미술 소장품이 모여 있는 5층의 전시장 2곳에 초기작 '부활의 성가'(1972)를 비롯해 가족 기증작 13점과 미술관이 따로 사들인 1점 등 작품 18점이 전시됐다. 처음 공개되는 작업노트, 다큐멘터리 영상 등 아카이브도 함께 나왔다. 닥지와 부직포 앞뒤로 채색해, 스며들고 우러나는 그의 그림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이우환ㆍ백남준ㆍ김환기ㆍ김창열ㆍ박서보ㆍ권영우ㆍ양혜규 등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여럿 소장하고 있는 퐁피두센터이지만 개인전을 연 사람은 2017년 이응노(1904~89)에 이어 방혜자가 두 번째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을 여는 '빛의 화가' 방혜자(1937~2022). 중앙포토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회고전을 여는 '빛의 화가' 방혜자(1937~2022). 중앙포토

‘빛의 화가’였다. 첫 만남은 경기도 고양군 능리(지금의 서울 광진구 능동)에서 나고 자란 어린 시절. 생전에 그는 “빛이 내게로 왔다”고 돌아본 바 있다. “몸이 약해 늘 개울가에 앉아 놀았어요. 수초와 자갈, 물결이 햇빛에 찬란하게 흔들리는 걸 보며 ‘이런 것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나’ 생각했죠.”(2016년 현대화랑 전시 당시) 후에 그림을 하게 되면서 그때 수면에 반짝이던 그 찬란한 빛을 씨앗 삼아 그림을 그려나갔다.

전시에 나온 '부활의 성가'(1972). 사진 퐁피두센터

전시에 나온 '부활의 성가'(1972). 사진 퐁피두센터

서울대 미대에서 장욱진에게 배웠다. 이우환ㆍ송영방 등과 함께였다. 졸업 후 1961년 국비 장학생 1호로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파리 국립미술학교와 국립응용미술학교 등에서 벽화와 색유리를 공부했다. 채색 유리를 비롯해 프레스코화ㆍ이콘화ㆍ판화 등 다양한 화법을 익혔다. 실험한 재료는 바뀌었지만 주제는 늘 한결같이 빛이었다. "빛은 생명이고, 생명은 사랑이고, 사랑은 평화"라고 했다.

작업실의 방혜자. 회고전 전시장에 걸려 있다. 사진 퐁피두센터

작업실의 방혜자. 회고전 전시장에 걸려 있다. 사진 퐁피두센터

재료는 자연에서 온 것들. 닥나무 줄기로 만든 종이, 흙과 광물성 천연안료와 식물성 염료, 식물성 정유로 만든 접착제를 썼다. 닥지를 구겨 천연염료로 색칠한 뒤 뒤에서 또 색을 칠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빛의 파동과 율동을 표현했다. 유럽의 천체 물리학자들과도 교류했다. 스위스의 한 천체연구소에서 "과학자도 아닌데 어떻게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연구한 것과 흡사한 모양의 빛의 입자를 그렸냐"고 했다. 마리퀴리대학에서 천체물리학자와 공동 강연도 열었다.

파리 샤르트르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 방훈 예술감독]

파리 샤르트르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 방훈 예술감독]

빛을 시각화한 그의 그림은 종교와도 맞닿아 있다. 파리 길상사, 서울 개화사, 광주 무각사 대웅전 후불탱이 그의 작품이다. 프랑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로 등록한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도 2018년 선정됐다. 대성당이 종교참사회의실의 보수를 마치면서 높이 4m 스테인드글라스 창 4개를 장식한 작품을 공모했고, 여기 ‘빛은 생명이요, 기쁨이며 평화’라는 그의 제안이 채택됐다. 당시 선정 소식에 친분 있는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가 "감탄을 자아내는 경이로움! 모든 창과 문을 혜자의 빛으로…. 브라보 혜자!"라고 축사를 보냈다. 방혜자는 이곳 스테인드글라스를 완공한 이듬해인 2022년 85세로 눈을 감았다. 전시는 내년 3월 9일까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