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폰, 비싸도 이 액정써라"…삼성 움직인 '20년 CEO' 그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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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행희 한국코닝 전 대표. 은퇴 후 더 바빠졌다. 청각장애인을 돕는 사회복지단체 사랑의 달팽이 사무실에서 지난달 2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응했다. 전민규 기자

이행희 한국코닝 전 대표. 은퇴 후 더 바빠졌다. 청각장애인을 돕는 사회복지단체 사랑의 달팽이 사무실에서 지난달 2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 응했다. 전민규 기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만 20년. 이행희(60) 한국코닝 전 대표 이야기다. 스마트폰 액정부터 자동차 유리, 반도체 등 안 쓰이는 곳이 없는 신소재를 개발하는 미국 기업 코닝의 한국 대표로 일하며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걸 본 그는 올 봄, 은퇴를 선언했다. 1988년 입사해 35년을 근무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아시아에서 주목할 여성 기업인"으로도 선정했지만, 과감히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인생 2막을 위해서다.

명함은 외려 4개로 늘었다. 포스코 인터내셔널 사외이사, 모교인 숙명여대 재단 이사, 청각장애인 지원 사회복지단체인 사랑의 달팽이의 부회장에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위한 컨설팅 기업까지, 1인 4역이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사학과를 졸업한 뒤 스스로 기업인의 길을 개척한 삶의 지혜가 궁금해 지난달 28일 만남을 청했다. 리더십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리더의 덕목은.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는 부하 직원들이 야심을 가질 수 있게끔 유도하고 기회를 주는 것. 누군가 그만두면 그 자리에 비슷한 스펙의 사람을 새로 뽑지 않았다. 그 아래 있던 사람을 승진시키는 게 내 원칙이었다. 쉽진 않다. 그 사람이 성장하고 적응할 때까지 나의 일도 늘어나니까(웃음). 하지만 믿고 맡기면, 사람은 커나가고, 나도 함께 성장한다."  
나머지는.  
"사람에 대한 이해다. 중요한 건 남은 이해하되, 나를 이해해주리라는 기대는 금물이라는 점이다. 부하들에게 '왜 이것밖에 안 되느냐, 왜 이해를 못 하느냐'라고 다그치면 안 된다. 어떤 자리에 앉아야만 보이는 방향성과 스피드가 있어서다. 세번째는 인내다. 내가 나를 내려놓고, 인내하며 묵묵히 하다보면 언젠가 고통은 끝난다. 더 이상 못할 것 같은 순간을 넘어가면 정상이 온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로 20년을 근무한 이행희 전 대표는 리더십 덕목으로 인내를 꼽았다. 전민규 기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로 20년을 근무한 이행희 전 대표는 리더십 덕목으로 인내를 꼽았다. 전민규 기자

기억에 특히 남는 실적은.  
"삼성 스마트폰 액정 유리 관련 일화가 떠오른다. 액정용 신소재 유리를 코닝이 개발했는데, 터치가 잘 되는 대신 단가가 좀 높았다. 구매 담당 부서에선 거부했다. 큰일 났다 싶었다. 판매 실적이 걱정돼서가 아니다. 애플은 이미 그 유리를 적용하겠다고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애플 이야기는 기밀이니 얘기할 순 없다. 하지만 삼성이 단가가 낮은 소재를 쓰면 품질에서 초격차가 벌어진다. 그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어떻게 했나.  
"결국 사람이 열쇠다. 누가 의사 결정자인지를 궁리했고, 상품 개발 담당 부서로 갔다. 앞으론 터치로 간다고 설득을 했고, 기업 각 부서를 모아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홍보 부서까지 다 불러서 신소재 비교 실험 결과를 실증했다. 그 자리에서 한 임원이 '단가가 높으면 그만큼 좋은 제품을 만들어 가격을 올려서 소비자 선택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결단을 내렸다. 한국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보람찬 순간이었다."  
그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렸나.  
"간절하면 통한다. 꿈에서도 생각하면 갑자기 떠오른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게 CEO의 임무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한 번 도전해볼까?'라는 마음이 아니라, '당연히 해내야지'라는 마음이 바로 든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즐거움으로 치환할 수 있었고, 일을 즐길 수 있었다."  
한국코닝은 시무식에서 "우리의 기술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다"는 요지의 문구를 읽는다. 이행희 전 대표가 만든 루틴이다. 전민규 기자

한국코닝은 시무식에서 "우리의 기술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다"는 요지의 문구를 읽는다. 이행희 전 대표가 만든 루틴이다. 전민규 기자

치환 안 되는 스트레스도 있지 않나.
"있다. 그럴 땐 그냥, 잔다(웃음). 코닝에서 받았던 리더 교육에선 '렛 잇 고(Let it go, 그냥 신경 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사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가 해준 말이다."  
힘들 때 기댄 존재는.  
"인문학이다. CEO들끼리 스터디를 구성해서 1주일에 한 번씩 테마를 잡고 전문가를 모셔서 고전 공부를 한 게 만 8년 됐다. 사람 사는 건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전엔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화가 났다면 이젠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여성으로 받은 차별은.  
"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여성을 인재로 키운다는 생각 자체가 없던 시절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매 순간 나를 증명해야 했다. 80년대엔 아예 상대를 안 해줬다. 기다리게 하는 건 기본, 회의 중 사라져서 찾아보면 남자들끼리 담배 피우며 얘기하는 일도 많았다."
이행희 한국코닝 전 대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꼽은 "아시아에서 주목할 여성 기업인"으로도 선정됐다. 전민규 기자

이행희 한국코닝 전 대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꼽은 "아시아에서 주목할 여성 기업인"으로도 선정됐다. 전민규 기자

그런 일도 잊을 만큼 일이 즐거웠나.  
"자긍심과 사명감이 컸다. 코닝은 한국엔 없는 기업이다. 기술을 170년 넘게 축적해온 기업이고, 그 선진 기술을 가져다 한국의 고객사들이 성장하도록 돕는 다리를 놓는다는 보람과 즐거움이 엄청났다. 매년 시무식에서 코닝의 기술로 대한민국 산업발전에 기여를 한다는 미션을 적은 문구를 임직원이 함께 읽는 루틴도 만들었다. 단순히 월급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로 한국이 발전한다는 게 뿌듯했다." 
가정을 꾸리지 않은 게 후회되지는 않나.
"글쎄. (결혼)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다. 결혼을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일에 매진하다 보니 이렇게 흘러왔다. 그 선택에 후회는 제로."  
남녀노소 모두에 조언을 부탁한다.
"계산기를 너무 두드리지 말자.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지를 따지며 뭔가를 하지 말고, 멀리 보자. 인생은 장기전이다. 지금 당장 플러스가 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는 일이면 하라. 신뢰가 쌓여 더 크게, 더 멀리 가는 게 인생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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