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퇴근 시간 서울 한복판서 벌어진 충격적 교통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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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승진·수상 직장인 등 9명 목숨 순식간에 앗아가

의문점 여럿 … 모든 가능성 열어 놓고 조사해야

그제 저녁 지하철 서울시청역 부근에서 승용차가 역주행하며 일으킨 교통사고로 9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퇴근 후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로 북적이는 시간에 벌어진 사건이라 더 충격적이다. 이 사고로 승진 축하 회식을 마치고 나온 은행원들, 이틀 새 상을 두 개나 받은 서울시 공무원 일행, 병원 주차관리 업체 직원 등 직장 동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아울러 어떻게 이런 사고가 났는지에 대한 의문점도 한둘이 아니다.

사고 차량은 웨스틴 조선호텔 지하주차장을 나오며 급가속하기 시작해 4차로 도로를 넘었고,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일방통행 도로를 고속으로 역주행하며 사람·오토바이·차량 등과 잇따라 부딪쳤다. 이어 9차로 세종대로를 가로질러 덕수궁 쪽에 멈춰섰다. 질주한 거리가 무려 200m가 넘는다.

사고 운전자는 경기도의 한 버스업체 소속 촉탁직 기사로 확인됐다. 올해 68세로 1974년 버스 면허를 딴 뒤 시내버스와 트레일러를 몬 40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자다. 경력에 비춰 믿기 힘든 사고가 난 만큼 음주운전이나 약물 복용 등이 의심됐지만 사고 직후 간이검사에선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운전자는 “출발할 때부터 차가 이상했고,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전혀 듣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하지만 급발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특히 CCTV에 찍힌 부드럽게 멈추는 장면은 전형적인 급발진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건물이나 차량 충돌 후 더 나아갈 수 없게 되거나 전복돼 멈추는 경우가 급발진의 대부분이라는 게 차량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반면에 충돌 과정에 차량 전자장치가 꺼졌다 다시 켜지며 리셋되는 경우도 있어 마지막 모습만으론 단정짓기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경찰과 국과수가 철저한 분석을 통해 진위를 가려야 하겠다.

역주행하는 동안 회피 동작을 하지 않은 점도 의문이다. 보통 운전자는 마주 오는 차량이나 보행자와 부딪칠 위험이 있을 땐 핸들을 꺾기 마련인데, CCTV나 블랙박스에 찍힌 모습에선 이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운전자가 현재 갈비뼈 골절로 입원 중이지만 이 부분은 명확히 소명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리 운전 미숙으로 단정짓고 고령자 운전 제한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러 규정상 65세부터 노인에 포함되지만, 요즘 68세를 일률적으로 운전하기 어려운 고령자로 구분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고령자 이동권에 대한 고려 없이 연령 기준만으로 운전을 제한하는 것은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다만 고령 운전자의 사고가 점차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만큼 이번 참사를 계기로 종합적 대책을 강구하는 노력은 필요하다.